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기간을 어느 정도로 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다른 요건들보다 덜 신중하게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임대차계약에 있어서 기간의 중요성은 주택보다는 영업의 영속성을 필요로 하는 상가임대차계약에서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장기간의 임대차가 반드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1년 내지 2년 정도의 단기간으로만 일단 계약한 다음 그 때가서 다시 연장해 주겠다’는 임대인의 말을 믿고 기간을 단기로 계약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영업상황이 매우 불확실해서 장기간 계약이 어려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장기간을 고집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임대차기간을 무작정 길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임차인들이 많다. 그 이유는, 그동안 단기 임대차로 인해 임대인들에게 시달린 경험, 영업이 잘 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 적지 않은 시설비 투자 등이 그 이유이다. 그런데, 이런 임차인들 중에는 일정한 임대차기간을 정했다고 하더라도, 임차인이 원하면 중도에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임대차기간을 4년으로 정했다고 하더라도 임차인이 원하면 임대인과의 합의없이도 기간만료 이전에 계약을 종료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계약기간이 장기화되는 한 원인이다. 이런 오해를 하는 사람에게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임대차보호법에 그런 내용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임대차보호법에는 법이 정하는 것 보다 짧은 기간으로 임대차기간을 정했을 때, 임차인 보호를 위해 최소한 일정기간을 보장하도록 강제하는 취지로 규정을 두고 있을 뿐, 장기간으로 계약기간을 정했을 때 임차인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는 임대차기간을 단기로 정하고 기간을 갱신하는 과정에서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관행이 있어왔고 이를 시정하는 차원에서 기간이 너무 단기간으로 정해지는 것을 시정하는 조항만이 임대차보호법에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장기간으로 한 계약기간 때문에 문제가 생긴 두 케이스가 기억에 남는데, 두 경우 모두 필자가 자문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외국계회사 관련 일이다. 이 회사 제주도 점포의 경우 10년이라는 장기로 건물을 임차했는데, 처음부터 영업이 부진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인건비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자, 결국 임차한지 3년만에 건물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임대인은 계약기간을 이유로 임차인의 철수에 동의하지 않아서, 결국 임차인은 보증금 10억원을 반환받기 위해 법원에 재판까지 청구했지만 결국 임대차기간이 종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차인의 청구가 기각되었다.
한편, 이 회사 서울 을지로 점포의 경우는 정반대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점포의 경우 이 회사를 임차인하여 역시 10년으로 임대차기간을 정했는데, 이 일대가 도심재개발되면서 기존의 건물주가 재개발회사에 이 건물 소유권을 처분하게 되었고, 그 이후 건물 소유권을 취득한 재개발회사측에서 임차인의 명도를 요구했다. 이에 이 회사는 종전 소유주를 상대로 계약기간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것을 이유로 한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이 일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재개발 소문이 있었는데, 임대인은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임차인의 요구에 따라 10년이라는 장기간의 임대차계약을 체결해버렸고 이로 인해 결국 건물을 처분하면서 임대차계약을 위반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몇 년 뒤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적정한 임대차기간을 정확하게 정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하지만, 계약체결 당시에 현출된 나름대로 최대한 여러 가지 변수들을 감안해서 계약기간을 정하는 것이 당연히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임대차계약기간을 정하는 지금 관행은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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