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교육감 후보가 1일 서울 서대문구에 마련된 선거사무소에서 출구조사 결과에 환호하고 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조 후보는 38.6%를 득표했다.   /연합뉴스
조희연 서울교육감 후보가 1일 서울 서대문구에 마련된 선거사무소에서 출구조사 결과에 환호하고 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조 후보는 38.6%를 득표했다. /연합뉴스
전국 17개 시·도에서 1일 일제히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성향 후보들이 약진했다. 지난 8년간 진보 진영이 14개 시·도를 휩쓸며 압도적 강세를 나타낸 것과 달라진 양상이다. 경기에선 12년 만에 보수 교육감 탄생이 유력하고 강원, 경북, 경남, 대구, 대전, 충북, 제주에서도 보수 진영의 승리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보수 후보들이 끝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조희연 현 교육감에게 또 패배했다.

진보 독주 8년 만에 끝나

2일 오전 1시 현재 개표 결과 전체 17개 시·도 가운데 최소 8곳에서 보수 후보들이 진보 성향 후보를 앞섰다. 교육감 선거가 처음 전국동시선거로 치러진 2010년만 해도 17명 가운데 10명이 보수 성향 교육감이었지만, 2014년 선거 때는 전국 17개 시·도 중 13곳에서, 2018년엔 14곳에서 진보 성향 교육감이 승리했다. 올해는 정치 지형의 판세가 바뀐 만큼 보수 후보들이 약진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돼 왔다.

경기교육감 선거에선 보수 성향 임태희 후보가 진보 성향 성기선 후보에 앞섰다. 경기도에서 보수 진영이 승리한 것은 12년 만이다. 4년 전 진보 진영이 차지했던 강원, 충북, 제주에서도 보수 성향 후보들이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의 관심이 가장 높은 서울에선 보수 후보들이 또다시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진보 성향 조희연 현 교육감에게 패배했다. 조전혁 박선영 조영달 등 보수 진영 후보들이 각자 유세를 펼치며 총력전에 나섰지만 표가 갈리면서 조희연 교육감이 여유 있게 3선에 성공했다. 보수 진영은 2014년·2018년 교육감 선거에서도 단일화에 실패해 득표율 합계가 과반임에도 잇달아 조희연 교육감에게 패했다.
임태희 경기교육감 후보(왼쪽)가 1일 지방선거 개표에서 앞서 달리는 것으로 나타나자 지지자들과 함께 수원 광교에 있는 선거 사무실에서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태희 경기교육감 후보(왼쪽)가 1일 지방선거 개표에서 앞서 달리는 것으로 나타나자 지지자들과 함께 수원 광교에 있는 선거 사무실에서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사고 폐지 원점으로 돌아가나

보수·진보 지형 구도 변화에 따라 앞으로 4년간 유·초·중등 관련 교육정책 방향도 바뀔 전망이다. 교육감들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은 외국어고·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다. 진보 교육감 당선자들은 외고·자사고가 고교 입시 경쟁을 부추겨 학교 현장을 황폐화하고 고교 서열화를 심화시킨다며 폐지를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보수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서 각 교육청이 자사고를 유지하기 위해 교육부에 관련 법령 재개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학생들의 기초학력 수준을 평가하는 근거로 쓰이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조사 방식을 놓고도 진보·보수 입장차가 크다. 과거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이 평가는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나친 경쟁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중3·고2만 치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보수 교육감 당선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 장기화로 학생들의 기초학력 저하가 심각해졌다며 전수평가를 부활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역대급 ‘깜깜이 선거’ 전락

전국적인 교육 정책을 결정하거나 협의하는 과정에도 교육감들의 정치 지형 구도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는 오는 7월 출범하는 국가교육위원회 초대위원 자리 한 석도 걸려 있어 정치권의 관심을 모았다. 과반인 9곳 이상을 차지하는 쪽이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과 당연직인 국가교육위 초대위원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이 약진했지만 이번에도 진보 진영이 과반을 확보하면서 국가교육위 자리 한 석도 가져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21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10년 단위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로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저조한 투표율만큼 이번 교육감 선거가 ‘역대급 깜깜이’ 선거였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날 서울지역 주요 투표소에서 만난 대다수 유권자는 어떤 후보가 어떤 정책을 내세웠는지 알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대문구 대현동에서 투표를 마친 임모씨(38)는 “아직 미혼이라 평소 교육정책에 관심이 없었다”며 “투표소에서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누가 나왔는지 검색해보고 투표했다”고 말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감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교육감 후보가 광역단체장 후보와 ‘러닝메이트’를 이뤄 선거를 치르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도 있다”며 “올해 출범하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교육감 선거 제도를 다시 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만수/최예린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