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尹정부 다음 시험대는 '차이나 리스크'
중국 48%, 일본 43%, 미국 41%, 한국 28%. 일본 정부 의뢰로 홍콩 입소스가 아세안 지역 10개국에 ‘G20 국가 중 향후 중요 파트너는 어디인가’를 복수 응답 형태로 물은 결과다. 중국을 견제한다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가 아세안 주요국을 참여시켰지만, 중국과 아세안은 서로 최대 교역국이다. 동아시아 허브는 일본에서 중국으로 이동했다. 일본도 미국도 중국의 역할을 대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상호 의존성의 무기화 카드는 미국과 중국이 다 쥐고 있다. 미국은 첨단기술 우위와 글로벌 금융 허브라는 네트워크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상대국을 감시·통제·차단하는 ‘파놉티콘 효과’와 ‘관문(choke point)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중국은 140개국이 넘는 나라의 최대 교역국이고, 미국조차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려운 세계 최대 제조국이란 점이 무기다. 그 사이에서 제3국은 미국을 따르지 않을 경우 가해질 2차 제재(secondary saction), 중국에 등을 돌릴 경우 수출·수입 제재를 우려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무기화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글로벌 공급망은 기업들의 비용 절감과 비교우위 등 경제적 효율성 추구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바꾸려면 경제적 손실 감수가 불가피하다. 패권을 우선하는 국가라면 장기적으로 대체 공급망 구축이 가능한지, 또 정치·군사 등 안보 이익이 경제 손실을 능가하는지 따져보고 무기화를 불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미국조차 자국 경제 및 기업의 피해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제3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세계 경제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견실한 성장률을 이어가고 중국은 성장률이 떨어지면 양국 간 GDP(국내총생산)의 역전이 훨씬 늦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그 가정을 충족시키기에는 미·중 간 경제 의존성이 높다. 자연스럽게 연결된 세계 경제를 억지로 분리하면 이른바 ‘분리의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커지기 마련이다. 글로벌 공급망 혼란으로 인한 물가 급등이 그 증거다.

인공지능(AI)발 4차 산업혁명에도 부정적이다. 미·중 경쟁으로 기술 발전이 빨라질 수도 있겠지만 관건은 기술 확산이다. 디지털 기술의 특징은 ‘수확체증’이다. 디지털 기술이 안보를 이유로 특정 블록에 갇히는 순간 수확체증은 제한된다. 대신 비용은 올라간다. 이는 총요소생산성(TFP)을 제약해 세계 경제의 구조 전환을 지체시킬 것이다. 최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대중국 전략 발언 가운데 흘려들을 수 없는 대목이 있다.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킨다.” “중국의 경제성장을 막지 않겠다.” “중국과 직접 소통할 준비가 돼 있다.” ‘장기전’과 ‘양면전략’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미국의 현실적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미국의 일은 미국이 해결하겠지만 문제는 한국이다. 한·미 동맹 확대로 모든 게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다. 미래 첨단기술 혁신과 시장 선도에 유리한 블록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한국은 중국과도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다.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중국과의 교류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는 오로지 한국의 몫이다. 수입 의존도가 90% 이상이고 경쟁력이 절대 열위인 품목 중 수입액이 상위 30%에 해당하는 한국의 핵심 수입 품목 228개 가운데 중국이 75.5%를 차지한다는 보고서가 있다. 제2 요소수, 그보다 더한 대란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다.

한국이 생존하려면 글로벌 공급망의 관문에 해당하는 전략자산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전략 자산화할 수도 없다. 현실성도 없고 전략도 아니다. 안으로는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고 밖으로는 대중 국익 외교가 절실한 이유다. 이 엄혹한 상황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을 놓고 힘겨루기나 하고 있다. 외교부는 중국과의 직접 소통을 늘리고 있는지 의문이다.

‘안보가 불안한 경제’도 위험하지만 ‘경제가 불안한 안보’도 위험하다. 안보와 경제 사이 새 균형이 요구된다. ‘유능한 정부’는 입으로 되는 게 아니다. 한·미 동맹 확대만으론 불안하다. 윤석열 정부의 다음 시험대는 ‘차이나 리스크’일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