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리 급등으로 휘청이는 글로벌 경제에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불거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커지면서다. 러시아는 세계 금융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며 서방의 제재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지만, 연일 불안한 정세 속에 러시아 증시가 급락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는 모양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8일(현지시간) "러시아가 경제적 요새화 전략을 통해 서방 국가들의 제재를 무력화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금지 등을 요구하며 우크라이나 접경 서부 지역에 10만명 규모의 병력을 배치했다. 우크라이나 북쪽의 벨라루스에도 병력을 집결한 러시아는 내달 중순 양국 연합군사훈련을 예고하는 등 여차하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겠다는 태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재 미국과 유럽이 논의 중인 러시아 제재 수위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때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러시아는 끄덕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수년간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가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에 대응하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기 때문이다. 최근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부 장관도 "위협과 제재가 현실화하더라도 우리 금융기관들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는 러시아의 '경제적 요새화' 전략 덕분이란 설명이다. 2014년 크림반도 사태 이후 러시아는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자국의 경제 시스템을 '탈달러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러시아 중앙은행 지급준비금은 2015년 말부터 70% 이상 급증해 현재 6200억달러(약 739조원)를 넘어섰다. 지난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이 가운데 달러 보유량은 2020년 6월 22.2%에서 지난해 16.4%로 줄어들었다. 외환보유액의 3분의1은 유로화, 21.7%는 금, 13.1%는 위안화 등이다.
출처=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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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자자 의존도도 낮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러시아 국채 투자를 금지한 이후 러시아 국채에 대한 외국인 지분은 20%로 떨어졌다. 러시아 기업들의 해외 금융기관 대출 규모도 2014년 3월 1500억달러였던 것이 지난해 800억달러로 급감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속된 국제 유가 상승으로 러시아 국부펀드에 축적된 자산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900억달러를 돌파했다. 러시아는 2024년 펀드 규모가 3000억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신 같은 기간 러시아 정부는 지출을 아꼈다. 보수적인 재정정책으로 사회지출과 인프라 투자가 제한됐고, 그 결과 실질소득은 급감했다. 이를 토대로 현재 러시아의 국가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0%로,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에 따르면 이는 2023년엔 18.5%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FT는 "2013년 이후 세계 경제가 연평균 3%씩 성장하는 동안 러시아의 연평균 성장률은 0.8%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핀란드 국제문제연구소의 마리아 샤기나 객원연구원은 "러시아 요새화 전략은 안정을 위해 경제성장을 희생하는 '포스트 소련'식 안정화 방안"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가 해외 금융 의존도를 낮추는 동안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EU는 천연가스 수입량의 40%, 원유 수입량의 25% 가량을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다. 러시아가 에너지 공급 중단 등으로 보복에 나설 경우 서방 국가의 제재 정책이 역효과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에 러시아 경제도 휘청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날 러시아 증시는 2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곤두박질쳤다. 모스크바증권거래소(MOEX) 지수는 6.5% 하락했고, 달러당 루블화는 0.9% 하락한 76.7로 9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