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내걸었지만…맥 못추는 장인라면
프리미엄 라면 시장에 야심차게 뛰어든 하림의 ‘The 미식 장인라면’(사진)이 초반부터 맥을 못 추고 있다. 한 봉지에 국내 최고가인 2200원의 가격을 내걸고 차별화를 꾀하고 있지만 비싼 가격이 초반 신제품 출시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돈값을 못 한다”는 실구매자들의 혹평이 이어지고 있다. 라면을 저가 대용식으로 여기는 국내 소비시장의 한계를 뚫지 못한 국내 1호 프리미엄 라면 신라면 블랙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장인라면 초반부터 맥 못춰

'프리미엄' 내걸었지만…맥 못추는 장인라면
2일 한국경제신문과 영수증 리워드 앱 ‘오늘뭐샀니’ 운영사인 캐시카우가 개별 소비자 영수증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1~19일 기준) 장인라면 구매경험도는 4.1%에 머물렀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장인라면 구매경험도는 출시 첫달 1.3%에서 시작해 이듬달 5.2%로 올랐다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봉지라면 시장의 양대산맥인 진라면(25.8%)과 신라면(25.5%)은 물론 안성탕면(15.0%)과 삼양라면(8.4%)에도 한참 밀렸다. 구매경험도는 해당 제품 카테고리의 전체 구매자 중 특정 제품 구매자 비중을 나타낸 수치다.

장인라면은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5년여간의 연구개발 끝에 내놓은 프리미엄 라면이다. 라면업계 퇴직 임원들을 대거 영입해 비싸더라도 최고의 맛을 내는 데 집중했다. 광고 모델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흥행으로 몸값이 치솟은 배우 이정재를 기용했다. 하림은 올해 라면 매출 목표를 700억원으로 잡을 정도로 흥행 성공을 자신했다.

하지만 현장 반응은 하림의 기대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장인라면 출시 초기 호기심에 구매하는 수요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지난달부터 수그러들었다”며 “판매량 기준 20위권 밖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출시 2개월이 지나면서 소셜미디어 등에 실구매자들의 시식 후기가 쌓이고 있지만 “기존 건면 라면과 다를 게 없다” “2000원을 내고 먹을 맛은 아니다” 등의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하림 내부에서도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라면을 시작으로 가정간편식(HMR) 등으로 영역을 넓혀 종합식품기업으로 거듭나려던 계획이 출발부터 흔들리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장인라면 출시를 이끈 윤석춘 하림 대표는 지난달 31일 돌연 사임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신제품의 시장 안착을 위해선 입소문과 재구매율이 중요한데 장인라면은 긍정적인 입소문은커녕 호기심에 사먹어본 소비자들도 재구매를 꺼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프리미엄 라면 국내시장서 고전

'프리미엄' 내걸었지만…맥 못추는 장인라면
업계에선 장인라면의 실패를 하림의 문제를 넘어 국내 프리미엄 라면 시장의 한계로 보고 있다. 문경선 유로모니터 식품 총괄연구원은 “미국과 유럽 등에선 라면을 하나의 요리이자 별미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한국에서 라면은 저렴한 대용식 또는 간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국내에서 일반 라면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싼 프리미엄 라면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프리미엄 라면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업체들은 판촉 행사에도 쉽사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프리미엄 라면은 마케팅 전략상 가격에서 타협하면 안 된다”며 “소비자들은 바로 옆 매대에서 공격적인 할인 판매를 하는 경쟁 제품 대신 프리미엄 라면을 선택할 동인이 없다”고 했다.

국내 라면업계 1위 업체 농심이 2011년 내놓은 프리미엄 라면 신라면 블랙(한 봉지 1700원)의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신라면 블랙의 지난달 구매경험도는 0.9%에 그쳤다. 설준희 캐시카우 대표는 “프리미엄 라면을 구매하는 이들이 많지 않지만 마니아층은 있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소비층을 지속 확대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박종관/노유정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