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기자회견서 언급…조기 총선에는 반대 입장 표명

드라기, 대통령 도전 시사?…"누가 총리되든 국정 여건 마련"
유력한 차기 이탈리아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마리오 드라기(74) 이탈리아 총리가 대통령직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는듯한 발언을 해 주목된다.

드라기 총리는 22일(현지시간) 연말 기자회견에서 향후 거취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내 개인적인 운명은 중요하지 않다.

특별한 야심은 없다"면서도 "누가 그 자리(총리)에 있든지 간에 국정이 지속될 여건은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언급은 현지 언론에서 드라기 총리가 세르조 마타렐라(80) 현 대통령 후임이 될 가능성을 연일 조명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7년 임기를 마치고 내년 2월 물러날 예정이다.

로이터·AP 통신 등 외신을 포함한 일부 언론은 드라기 총리의 이 발언을 놓고 '대통령직 출마 의지를 드러낸 것', '키지 궁(총리 관저)에서 퀴리날레 궁(대통령 관저)으로 옮겨갈 수 있음을 시사한 것' 등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지낸 드라기 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와중이던 지난 2월 정국 불안 속에 주세페 콘테 총리 내각이 붕괴하자 마타렐라 대통령 지명으로 총리직을 맡았다.

좌·우파 정당을 아우르는 '무지개 내각'을 구성한 그는 이후 코로나19 대응, 경제 위기 관리, 사법시스템 개혁 등을 무난하게 추진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연합(EU)이 제공하는 1천915억 유로(약 258조 원) 회복 기금을 토대로 한 중장기 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PNRR)도 국내외 호평 속에 본궤도에 올려놨다.

일반적인 여론은 드라기 총리가 국정 안정과 정책의 연속성을 위해 현 의회의 임기가 만료되는 2023년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총리보다는 대통령으로 7년을 더 봉직하는 게 국익에 합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현지 정가에서는 드라기 총리가 대통령직으로 옮겨갈 경우 위태하게 버텨온 무지개 연정이 붕괴하며 조기 총선으로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많다.

이는 정국 혼란을 불러 진행 중인 경제·사회 개혁 정책을 지연 혹은 무산시킬 가능성도 있다.

드라기 총리도 이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방역과 경제성장, PNRR 집행을 위해선 현 의회가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쳐야 한다"며 조기 총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으나 희망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이탈리아 대통령은 평시에는 다른 내각제 국가와 마찬가지로 상징적인 국가수반의 역할에 그치지만, 연립정부가 붕괴하는 등 비상 정국에서는 의회 해산 및 조기 총선 결정, 차기 총리 후보자 지명 등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헌법에 기반한 법률안 거부권도 있다.

대통령 선출 투표는 상·하원 의원과 20개 주(州) 지역 대표들이 소집된 가운데 내년 1월 중 실시될 전망이다.

후보자는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하며, 세 차례 투표에서도 충분한 표를 얻지 못하면 네 번째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를 뽑게 된다.

관례상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 대외적으로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아 안갯속에서 비밀 투표 방식으로 진행되는 데다 최종 선출까지 수일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교황 선출 투표인 '콘클라베'(Conclave)에 비견되기도 한다.

현재 드라기 총리 외에 3선 총리를 지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5)도 우파 진영의 지지를 받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