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송아지도 키우는 '조각 투자'
“태평양과 대서양에 떠 있는 화물선 몇 척을 우연찮게 인수했는데, 수십억원 이상 투자할 사람을 찾고 있다.” 예전에 금융계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대양을 운항하는 배가 항구에 닿기도 전에, 실시간으로 사고파는 시대다. 몇 년 전엔 캐나다에서 갓 벌목한 목재가 유망 투자자산으로 각광받기도 했다. 주식·채권이 아닌, 부동산 등 다양한 형태의 자산에 투자하는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의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비싼 자산을 지분 형태로 쪼개 공동투자한다는 ‘조각 투자’는 다른 말로 하면 ‘대체투자의 대중화’라고 할 수 있다. ‘강남 빌딩 5000원어치’ ‘김환기 미술품 100만원어치’ ‘유명 와인 1000원어치’ 식으로 투자한다. 명차로 불리는 페라리는 10만원부터 투자받기도 했다. 슈퍼리치의 전유물이던 ‘대체투자의 세계’가 보통사람들 앞에도 펼쳐진 것이다.

조각 투자 대상인 해외주식·비상장주식·부동산은 값이 오르내리지만, 롤렉스 시계 등 명품과 샤넬·나이키의 한정판, 와인 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송아지 투자 플랫폼 ‘뱅카우’(최소 투자액 4만원)도 그런 예다. 공동투자로 매입한 송아지를 2년간 농가에 맡겨 사육한 뒤, 경매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나눠준다. 물론 한우 가격 급락 위험은 피해야 한다. 버는 사람 있으면 잃는 사람 있게 마련인 선물·옵션 등의 ‘제로섬’ 게임과 달리 ‘생산적’ 투자가 될 수 있다.

조각 투자는 주식 1주를 쪼개 거래할 수 있는 ‘소수점 투자’에서 발전한 것이다. 인터넷상의 이미지나 동영상, 음악파일 등은 대량 복제가 가능해 원본 파악이 어려운데, 이를 대체불가능토큰(NFT)이라는 블록체인 기술이 해결했다. 음악저작권이나 미술품의 조각 투자가 가능해진 것이다. 금융당국은 해외 주식에 이어 국내 주식의 소수점 거래도 허용 방침을 밝혀 조각 투자에 시너지가 날 전망이다. 미국에선 벌써 메타버스 서비스 내에 있는 가상 토지의 소유권을 NFT로 판매하고 있을 정도다.

남은 걸림돌은 투자자 보호 문제다. 일종의 자산유동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국내 업체들 대부분이 금융투자업체가 아닌, 통신중개업자로 등록한 점은 보완해야 한다. 소수점 거래에서 출발한 ‘대체투자의 대중화’가 ‘버추얼화(가상화)’까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신할지 궁금하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