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근의 미학경영] 기업·소비자의 양방향 애착감
코로나 팬데믹 이후 뉴노멀 경영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는 ‘미학경영’의 핵심 메시지는 미학적 감동 경험을 통한 팬덤 형성과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창조적 혁신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다.

세계적인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과 팬클럽 아미(ARMY), 혁신의 대명사 애플과 충성스런 애플빠, 전기차 다크호스 테슬라와 테슬라빠. 이들의 공통점은 ‘기업·소비자 양방향 애착감’ 형성이다. 이 시대 경영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소비자와의 양방향 애착관계 형성의 비밀은 무엇일까?

독일 미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1903~1969)는 예술이 ‘다정한 보호 관계를 맺는 대상에 대한 일종의 껴안기’로서의 밀착성을 가진다고 했다. 예술작품은 예술가 또는 감상자가 세상과 밀착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편,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컷(1896~1971)은 ‘대상관계이론’으로 아기가 어머니, 나아가 세상과 어떻게 애착관계를 형성하는지 설명했다. 생후의 아기에게 어머니는 보호자이자 마법과도 같은 전지전능함을 가진 존재다. 좋은 어머니는 아기에게 안전 기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환경이 잘 조성됐을 때 아기는 진정한 자아를 정립하며, 타인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상관계이론은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다만 심리학에서처럼 어머니와 아기 역할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소비자 모두 어머니 또는 아기 역할을 맡는다. 이를 ‘기업·소비자의 양방향 애착감’이라고 하자. 먼저 기업이 어머니 역할을 하는 경우, 기업은 브랜드와 소비자의 자아 정체성을 연계한 팬 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때 소비자는 고유성을 지닌 한 명의 진정한 팬으로서 개인·인간적 측면에서 공감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된다. 팬 활동은 비슷한 특성과 목표를 공유하는 더 큰 집단의 일원으로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김효근의 미학경영] 기업·소비자의 양방향 애착감

애착감 키우는 이케아 '인형 그리기'

반대로 소비자가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경우, ‘선의’를 핵심으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소비자의 안목)을 요구하는 소비 환경을 조성한다. 기업은 이에 맞춰 높은 수준의 미적, 윤리적 정체성을 갖추게 된다. 나아가 파트너사, 시민사회 등 확대된 이해당사자를 고려하는 경영 활동을 펼치게 된다. 최근 부각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기도 넓게 보면 미학적 애착관계 형성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스웨덴의 가구 제조 기업 이케아는 브랜드와 어린이가 양방향 애착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매년 ‘소프트 토이 그리기 대회’를 연다. 인형 그리기를 좋아하는 만 12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상상하는 인형 디자인을 공모하는 것이다. 선정된 디자인은 실제 인형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 이케아 매장에서 판매된다. 아이들에게 이케아는 자신이 그린 인형을 현실에 데려오는 마법과도 같은 전지전능한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판매된 인형 수익금은 충분히 놀 기회를 갖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반대로 소비자는 사회적 역할을 고려하는 경영 활동을 펼치도록 기업을 지원하는 어머니 역할을 하게 된다.

욕구 충족 통한 감동 경험 제공을

심리학자 멜라니 클라인(1882~1960)은 특히 생후 6개월의 경험이 자아 형성에 결정적이라고 했다. 팬 활동 역시 커뮤니티에 소속되기 이전에는 혼자 고립되는 시기가 존재한다. 소비자를 브랜드 영역 안으로 빠르고 안전하게 정착시키려면 기업 차원에서 이런 고립 시기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SNS 가입 권유 등을 통해 팬덤으로 편입시키거나,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혼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는 활동을 고안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머니와 아이의 애착관계가 잘 형성됐을 때, 아이는 자아 정체성의 인식과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발달되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과 자기 사이의 성공적인 관계 맺기를 통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소비자 사이의 양방향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면 소비자는 건강한 팬덤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때로는 어머니처럼, 때로는 건강한 아이처럼 해당 제품·서비스 브랜드를 자신의 삶에 성공적으로 통합하고 빈번한 감동 경험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게 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소비자는 더 이상 돈을 지급하는 현금인출기가 아니다. 기업의 생명과 존재 의미를 확인시켜 주는 미학적 감동의 발현 주체다. 어머니와 같은 진정한 사랑과 세심한 욕구 충족을 통해 아이가 매 순간 감동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김효근 < 이화여대 경영대학장·작곡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