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수사 늦어질수록 고통은 커진다
최근 쓴 한 기사로 악플과 비난에 시달린 적이 있다. 5월 10일자 한경 A2면에 나온 ‘공공장소·길거리 음주, 이대로 둘 건가’란 기사였다.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술을 마신 뒤 숨진 채 발견된 손정민 씨 사건과 관련해 ‘공공장소 음주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는 댓글 2200개가 달렸다. 이 중 ‘좋아요’가 가장 많은 댓글은 “논점 흐리지마라ㅋㅋ 진짜 장난하나”였다. “이 사건을 이렇게 몰고 간다고?” “이건 살인사건이다”라고 적은 댓글에도 좋아요가 수백 개씩 달렸다. ‘사고 당시 손씨와 술을 먹고 있던 친구 A씨가 손씨를 죽였다’는 믿음에서 나온 주장인 듯 보였다. ‘기레기’라는 조롱을 넘어 “음모와 유착 아니냐”는 반응에 적지 않게 놀랐다.

지난달 25일 손씨가 안타깝게 숨진 지 한 달이 지났다. 사망 경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인터넷에서는 합리적 의혹 제기를 넘어 극단적 주장이 떠돌아다닌다. “친구 A씨의 아버지가 대학병원 교수다” “법조계 유력인사와 관련됐다” “전 강남경찰서장이 A씨의 삼촌이다” 같은 여러 주장이 커뮤니티와 포털에 돌았다. 모두 사실무근이다.

‘먹잇감’을 포착한 유튜버도 빠르게 뛰어들었다. “손씨가 꿈에 나왔다”는 무속인 출신 유튜버부터 “A씨가 중고생 3명과 손씨를 살해해 유기했다”는 기자 출신 유튜버까지.

한 네티즌은 “경찰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며 123쪽 분량의 분석 보고서까지 만들었다. 이들의 주장은 하나다. 겉으로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지만, 속내를 까면 ‘A씨가 손씨를 죽였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무분별한 의혹 제기는 늘 있었다. 그 대상은 공적 책임을 져야 할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의혹 제기 대상은 민간인 20대 대학생 A씨다. 옳고 그름을 떠나 온갖 추측과 비난으로 고통받는 A씨를 책임지는 이는 그의 부모 이외엔 찾기 어렵다.

경찰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수많은 음모론이 떠도는데 서울 서초경찰서는 강력계 7개 팀을 투입하고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못 내놓고 있다. 일곱 차례 이어진 조사에 A씨는 “심리적 압박이 한계치를 넘었다”고 했다. 수사가 길어지자 “여론을 의식해 수사 결과 발표를 늦추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자극적인 주장과 구호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사실과 거짓을 떠나 ‘내가 믿고 싶은’ 내용을 진실로 여긴다. 정보기술(IT)과 SNS 발전에 따른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경찰의 조속한 수사는 온갖 추측과 의문을 줄일 유일한 수단이다. 수사가 늦어질수록 누군가는 남이 무심코 던진 돌에 더 큰 고통을 받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