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공정거래위원회가 배포하는 대기업 지배구조 관련 보도자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사각지대’란 표현이다. 규제 대상이 아닌데도 내부거래액이 적지 않다는 이유로 공정위는 ‘사각지대 기업’의 사명과 지분구조를 낱낱이 공개한다.최근 공정위는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며 ‘총수 지분 0%’ 기업들까지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넣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조계에선 “기업 내부거래에 대한 색안경을 낀 과잉 입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총수 지분 없어도 ‘규제 대상’27일 정부에 따르면 국회에 제출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엔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현재 규제 대상은 총수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상장사, 20% 이상인 비상장사다. 공정위는 규제 대상을 총수일가가 지분을 20% 이상 직접 보유한 상장·비상장사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삼성생명 현대글로비스 등 총수일가 지분율 ‘20% 이상, 30% 미만’ 상장사 30곳이 규제 대상에 추가된다.공정위는 총수일가 지분 20% 이상인 상장·비상장사의 자회사(지분율 50% 이상)까지 규제 대상에 넣는 조항을 개정안에 끼워넣었다. 이 경우 삼성카드 등 총 358곳이 공정위 조사 대상 목록에 추가되는데, 이들 기업은 총수일가 지분이 아예 없거나(315곳) 지분율이 10% 미만인 곳(28곳)이 95.8%다.공정위는 자회사까지 규제 대상에 넣는 첫 번째 이유로 “총수일가가 우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총수일가가 A사 지분을 30% 보유하고 있고, A사가 B사 지분을 70% 보유하고 있다면, 총수일가의 B사에 대한 간접지분율이 21%(0.3×0.7)이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다.법조계와 학계에선 과잉 규제란 비판이 나온다. 우선 간접지분율을 규제 근거로 도입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란 지적이다. ‘총수 일가-A사-B사’로 연결되는 지배 구조에서 총수가 간접지배를 통해 B사로부터 부당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근거를 공정위가 증명할 수 있냐는 것이다.박근혜 정부 땐 ‘간접지분율’을 내세워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공정위 내부에서도 ‘옳지 않다’는 목소리가 우세했다. 2017년 초 공정위 최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시시각각 변하는 간접지분율을 통해 기업을 규제하면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도입에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효율성 따져 내부거래공정위의 논리를 인정해 간접지분율로 계산하더라도 358개사 중엔 총수일가 간접지분율이 사익편취 규제 관련 총수의 지분율 기준인 ‘20%’에 못 미치는 업체가 적지 않다. 총수일가 지분율이 20.8%인 삼성생명이 지분 71.8%를 들고 있는 삼성카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 총수일가의 삼성카드 직접지분율은 0%고 간접지분율은 약 14.9%(0.208×0.718)에 불과하다. 하지만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삼성카드는 공정위의 조사 대상에 들어간다. 대기업 관계자는 “공정위 감시를 받는 것만으로도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며 “조사가 시작되면 1~2년 시달리는 건 기본”이라고 설명했다.‘사각지대 기업의 내부거래가 많다’는 공정위의 규제 대상 기업 확대 주장에 대해서도 ‘편향된 시각에 근거했다’는 반론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최승재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장(변호사)은 “사업 효율성 등을 따져 그룹 계열사들이 내부거래하는 것에 대해 정부가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며 “그룹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주사 장려책과 거꾸로”그동안 지주회사 체제를 장려한 정부 정책과 거꾸로 간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그룹들은 ‘총수일가-총수일가가 지분 20~30%를 가진 지주사-지주사의 자회사’로 이어지는 소유구조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 확대되면 지주사 소속 자회사 대부분이 공정위 감시 대상에 들어간다.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는 “지주사를 장려했던 공정위에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며 “안정적인 기업 경영을 위해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앞으로 총수일가 지분율이 0%인 기업도 계열사와 거래하면 ‘총수일가에 부당이익을 제공했다’며 제재를 받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 전망이다. 정부·여당이 총수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인 기업의 자회사라면 직접 보유 지분이 없더라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넣는 방안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학계와 법조계에선 기업을 범법집단 취급하는 ‘과잉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보면 ‘총수일가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총수일가 지분율 20% 이상인 대기업의 자회사(지분율 50% 이상)가 포함됐다. 해당 기업은 지난 5월 기준 358곳으로 삼성카드 팬오션 등 대기업 핵심 계열사가 대거 들어 있다. 이들 기업은 계열사와 ‘상당히 유리한 조건’ 등으로 거래하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게 된다.법조계와 학계에선 과잉 규제란 비판이 나온다. 358곳 중 315곳(88%)은 총수일가 지분율이 0%다. 총수일가 지분율이 10%를 넘는 기업도 손에 꼽을 정도다. 총수일가에 부당이익을 제공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기업을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지적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27일 “‘총수가 지분율이 높은 회사를 통해 부당이익을 거두는 행위를 규제한다’는 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말했다.공정위는 △총수일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358개 기업의 내부거래가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규제 만능주의 사고’라고 평가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내부거래에 편견을 갖고 사전 규제부터 도입하는 것”이라며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현대자동차 노사가 11년 만에 임금(기본급)을 동결하고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무파업으로 임금협상을 타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위기 극복을 위해선 노사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생산직 중장년 근로자가 대거 임금 동결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나 다른 완성차업체는 물론 산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대차 노사, 11년 만에 임금 동결현대차 노동조합은 조합원 4만9598명을 대상으로 지난 25일 올해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한 결과 4만4460명(89.6%)이 투표해 2만3479명(52.8%) 찬성으로 가결했다고 26일 밝혔다. 합의안은 임금(기본급) 동결과 성과급 150%, 코로나19 극복 격려금 120만원, 우리사주 10주, 전통시장 상품권 20만원 등을 담고 있다. 이번 가결로 노사는 11년 만에 임금을 동결하게 됐다. 현대차 임금 동결은 1998년 외환위기, 2009년 금융위기에 이어 세 번째다.현대차 노조가 임금 동결을 선택한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29.5%(6085억원) 줄었다. 1~8월 차량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1.4%(61만1026대) 감소했다. 이에 따라 ‘일자리부터 지키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미국 GM, 프랑스 르노, 독일 BMW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잇따라 수만 명씩 인력 감축에 나선 점도 영향을 미쳤다. 현대차 노사는 올해 교섭에서 국내 생산물량 연간 174만 대 이상 유지, 재직자 고용 안정 등을 위해 노력한다는 데 합의했다.앞서 비집행부 노조원 일부가 기본급 동결에 불만을 품고 부결 운동을 벌였지만 오히려 울산공장 등 현장 근로자 상당수가 임금동결을 받아들였다. 전체 찬성률은 약 53%였지만 울산과 아산, 전주공장 노조원의 찬성률은 60%를 훌쩍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년간 반복돼온 노사 교섭 장기화의 피로감이 반영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합의안을 부결시켜도 조합원들로선 더 얻을 게 없다는 현실적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기아차 급물살 기대, 한국GM은 난항앞서 만도, 포스코 등이 올해 임금 동결에 합의한 데 이어 현대차 노조도 임금 동결을 선택하면서 완성차는 물론 산업계 전반의 단체교섭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기아차 노조의 최대 관심사도 일자리 지키기다. 업계에선 기아차 임금협상이 통상 현대차와 비슷한 수준으로 진행됐던 만큼 현대차 노조의 이번 투표 결과가 기아차 교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르노삼성차 역시 노조 집행부가 추진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가입이 일반 노조원의 반대로 무산되는 등 실리를 챙기려는 모습이 뚜렷하다.완성차업계에서 가장 난항이 예상되는 곳은 한국GM이다. 노조 집행부가 이달 초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조합원 80%가 찬성한 데 이어 중앙노동위원회가 노사 간 쟁의 조정을 중지하면서 파업 등 쟁의권을 확보했다. 한국GM 노조는 사측이 성과급 등을 더 인상하지 않으면 파업까지 벌이겠다는 방침이다.현대중공업 노사는 올해는커녕 작년 임금협상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물적분할 과정에서 발생한 조합원 1400여 명 징계 문제와 손해배상 소송 등을 놓고 줄다리기 중이다. 지난해 5월 시작한 협상이 1년4개월 넘게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노조는 23일 부분 파업을 벌이는 등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