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BTS와 소프트 경쟁력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세계 각국은 제조업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했다. 공장이 죄다 해외로 빠져나간 선진국들은 정작 마스크 한 장 만들 수 없어 안절부절못했다. 한국은 그런 점에서 복 받은 제조업 강국 중 하나다.

여기에 낭보가 하나 더해졌다.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1위에 오른 것이다. 세계 104개국과 지역 아이튠스 ‘톱 송’ 차트 1위, 스포티파이 ‘글로벌 50’ 차트 1위 등 기록도 세웠다. 제조업의 ‘하드파워’는 물론, 문화·예술 등 콘텐츠 중심의 ‘소프트파워’ 강국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

한류 인기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가장 벽이 높다는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 등극은 대단한 성과다. 빌보드 앨범차트인 ‘빌보드200’ 정상에 네 차례 오른 것은 ‘아미’(BTS팬)의 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싱글차트 정복은 팬덤을 넘어선, 문자 그대로 세계적인 ‘빅 히트’다.

그 비결은 우선 ‘글로벌화’를 위한 남다른 노력에 있다. 우리말 가사를 일종의 ‘룰’로 지켜오던 BTS가 처음 영어 가사의 곡을 받아들였다. 그것도 영국 작곡가와 작사가의 곡이다. 곡 초반부는 마치 브루노 마스가 부르는 것처럼 매력적인 음색의 영어 가사로 시작한다. ‘한국 콘텐츠는 이래야 한다’는 암묵적 한계를 넘어 전 세계 음악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어가 얼마나 국제경쟁력에 기여하는지 우리 교육계도 새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경쟁국인 대만은 이미 작년부터 영어를 제2 공용어로 삼았다.

아울러 ‘BTS 신화’ 이면에는 한류산업의 발전 원동력인 무한경쟁이 숨어 있다. BTS처럼 성공을 꿈꾸는 수천, 수만 명의 K팝 연습생들과 신인 그룹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K팝 생태계의 치열한 경쟁이 어느덧 우리 문화상품을 세계 최고 반열에 올려놨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도 스크린쿼터 같은 ‘국산품 애용’ 수준의 근시안적 사고의 틀을 깬 데 따른 ‘선물’이었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기술·지식·제품과 연결해내는 ‘서사(敍事) 창조의 힘(story making)’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더욱 중요해졌다. 하드파워와 더불어 새롭게 눈뜬 소프트 경쟁력에서 우리 경제가 다시 도약할 길을 찾아야 할 때다. 그 길을 이미 BTS가 보여주고 있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