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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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DC 가입자 중에서도 주식형 펀드 투자 비중이 높은 사람들은 걱정이 더 크다. 주식시장이 속절없이 무너진 탓에 DC 수익률이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이번 상황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10여 년 만에 세계적으로 커다란 충격이 다시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국은 퇴직연금 제도를 2005년 도입했다. 그래서 2008년 금융위기 때는 퇴직연금 가입자가 그리 많지 않았고 DC 가입자도 소수여서 금융위기로 인한 충격이 덜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DC 가입자가 꾸준히 늘어 287만 명(2018년 말 기준)에 달하고, 이들의 적립금도 48조원에 이른다.

현재 위기 상황이 진행되고 있어서 DC 가입자들이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전반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퇴직연금 제도를 한국보다 수십 년 앞서 도입한 미국의 DC 가입자들이 2008년 금융위기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살펴본다면 한국 DC 가입자들을 위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미국과 글로벌 증시는 2007년 10월까지 상승하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2008년 들어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모기지 사태도 악화됐다. 2008년 9월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고 다음달 채권 대비 주식의 수익률이 -14%에 달했다.
금융위기 당시 美 퇴직연금 가입자의 교훈…"성급히 매매하지 마라"
이런 상황이 미국의 대표적 DC형 퇴직연금인 401(k) 가입자에게 미친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1900개 기업의 401(k) 가입자 225만 명의 39개월치 자료를 분석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는 2006년 1월~2008년 8월을 금융위기 이전으로, 2008년 9월~2009년 3월을 금융위기 당시로 구분했다.

금융위기가 닥치자 퇴직연금 계좌에서 매월 한 번 이상 매매하면서 매우 적극적으로 관리한 사람의 비중이 증가했다. 금융위기 이전 2.3%에서 금융위기 당시엔 2.9%로 늘었다. 증가율로는 26%에 달한다. 그러나 나머지 대다수 퇴직연금 가입자는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401(k) 가입자들이 금융위기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이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금융위기 이전 32개월 동안 세 번 이상 매매한 사람은 ‘적극적 매매자’, 한두 번 매매한 사람은 ‘소극적 매매자’, 금융위기 때 처음으로 매매한 사람은 ‘위기에서 첫 매매자’로 명명했다.

401(k) 계좌 잔액은 적극적 매매자가 15만7000달러로 가장 많았다. 소극적 매매자는 10만7000달러, 위기에서 첫 매매자는 7만달러였다. 퇴직연금 계좌 잔액이 많을수록 더 적극적으로 매매한다는 얘기다. 금융위기 이전 401(k) 계좌의 포트폴리오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세 유형 모두 71~72%로 높았다. 금융위기 당시엔 세 유형 모두 이 비중이 줄었다. 적극적 매매자와 소극적 매매자는 10%포인트 정도 감소한 데 비해 위기에서 첫 매매자는 71%에서 50%로 20%포인트 줄었다. 이 결과는 자신의 퇴직연금 계좌를 관리하지 않았던 사람이 금융위기가 닥쳐 주식시장이 급락하자 더 많은 주식을 팔았다는 의미다.

흥미로운 점은 적극적 매매자의 경우, 금융위기 당시인 7개월간 월 평균 2.4회 매매했는데 이는 위기에서 첫 매매자(1.1회)에 비해 두 배 이상 많다. 주식 비중 축소 규모는 반대로 적극적 매매자가 위기에서 첫 매매자의 절반 수준이다. 한마디로 적극적 매매자가 조금씩 자주 매매함으로써 시장 변동에 더 신중하게 대응한 것이다.

이는 주식시장 변동성이 1% 증가할 때 주식 비중을 얼마나 줄였는지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금융위기 당시 주식시장 변동성이 1% 증가하면 적극적 매매자는 주식 비중을 1.7% 줄였다. 소극적 매매자는 4.4% 줄였고, 위기에서 첫 매매자는 6.8% 줄였다. 평소 자신의 퇴직연금 계좌에서 매매하지 않고 방치해 둔 사람들(위기에서 첫 매매자)이 금융위기가 닥치자 허겁지겁 주식을 팔았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제껏 자신의 DC 계좌 관리에 소극적이었던 사람이 주식시장 변동성에 놀라 성급히 매매하는 잘못은 경계해야 한다.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