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對北 '낭만적 비핵화 외교'는 끝내야
세계 질서가 ‘자유 대(對) 독재’의 충돌 구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평화 만능주의가 지배하던 탈(脫)냉전 시대의 꿈에서 깨지 못한 이들이 혼란스러워할 정도로 그 속도가 빠르다. 베를린 장벽 붕괴로 시작된 탈냉전 30년은 이념 대결에서 승리한 자유민주주의가 지구 전체로 확산되고, 인류는 평화와 번영을 누릴 것이라는 희망으로 가득한 시기였다.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을 파트너로 삼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자 했다. 러시아는 1994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평화 파트너십, 1998년에는 주요 8개국(G8)에 가입해 새 시대의 동반자로 인정받았다. 중국도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이익당사자로 대우받았다. 세계사적 흐름을 타고 한국이 1990년 9월 소련과, 1992년 8월 중국과 수교함으로써 동북아에서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립구도가 허물어졌다.

남북한 관계도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공산주의 붕괴로 위기를 맞은 김일성이 남북대화에 매달렸다. 노태우 대통령도 북방정책의 성과를 바탕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양측은 1990년 9월부터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고위급회담을 여덟 차례 개최했다. 1991년 12월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은 탈냉전 시대의 남북관계를 상징하는 문건이다.

그러나 세계는 다시 강대국들이 패권을 다투는 경쟁시대로 돌아왔다. 21세기 국제질서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와 그 대척점에 있는 독재의 충돌이다. 러시아가 유럽에서, 중국이 아시아에서, 이란이 중동에서 독재체제를 강화하면서 자유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은 탈냉전 시대의 화해협력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독재정권들의 패권 장악을 막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바깥세상이 바뀐 것을 모른 채 좌충우돌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여름옷을 입은 채 칼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을 힘들어하는 것과 같다. 한국 사회는 탈냉전 시대를 지나며 온실 속 화초처럼 결기를 잃고 나약해졌다. 그 결과 국가적 위기 앞에서도 편법과 꼼수만 난무한다. 이제 환골탈태해서 자유와 독재의 충돌 시대에 맞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 우선 탈냉전 시대조류에 영합해서 추진했던 정책을 바꿔야 한다.

첫째, 우리가 핵개발을 포기하고 북한도 따라오게 한다는 비핵화 외교를 끝내야 한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7명의 대통령이 이 정책을 고집하며 국력을 소모했지만 결과는 ‘핵을 가진 북한’이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자체 핵역량을 확보하고 ‘핵 대 핵’의 균형을 맞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둘째, 대(對)중국 정책도 바꿔야 한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과도한 반발을 통해 우리는 중국의 민낯을 확인했다.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하는 것은 아직 탈냉전 시기의 꿈에서 깨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중국에 대한 낙관적 희망과 과도한 의존·편승, 심지어 굴종에 가까운 정책을 모두 버려야 한다.

셋째, 북한 독재정권과 협상을 통해 평화통일을 달성하겠다는 정책도 실패했다. 그동안 교류협력이 활발해지면서 북한에 대한 감상주의가 만연하고 대북 경계감만 약화됐다. 김정일을 만난 김대중 대통령이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각오로 북한을 대하자고 했지만 전쟁을 위협하는 쪽은 북한 정권이다. 이들의 최대 위협이 ‘부강한 자유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이제 독재정권을 최대한 압박하면서 북한 주민의 힘을 키워주는 대북전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냉전구조 해체와 평화체제 구축도 평화 만능주의에 편승했던 구시대의 유물이다. 정전체제는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뒷받침해 온 지역질서이며 자유와 독재의 충돌시대에 그 중요성이 더 커졌다. 강력한 정전체제를 바탕으로 자유가 승리하는 그날 우리는 통일을 성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