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의 ‘2019 사회조사 결과’에서 “계층이동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비율이 22.7%에 그친 것은 도전정신과 활력을 잃어가는 우리 사회를 단적으로 함축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2009년 37.6%에서 10년 새 15%포인트 줄었다. 반면 계층이동 가능성이 ‘낮다’는 64.9%(‘모른다’ 12.4%)에 달했다. 자식세대의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해서도 ‘높다’는 응답이 2009년 48.3%에서 올해 28.9%로 20%포인트 떨어졌다.

계층상승 기대치가 뚝 떨어진 것은 장래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1%대 저성장이 고착화할 조짐인 데다 주력산업은 중국의 추격에 고전 중이고, 내수경기도 회생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럴수록 ‘파괴적 혁신’을 통해 경제활력을 되살려야 할 텐데, 신(新)산업은 기득권과 규제에 꽉 막혀 버렸다. 일자리가 나올 곳이 없는 반면 넘치는 유동성과 공급규제 탓에 서울 집값만 고공행진이다. 소득격차가 더 벌어질 판이다.

성장도, 분배도, 일자리도 없는 나라가 돼가고 있다. 청년 4~5명 중 한 명은 ‘백수’인 처지이고, ‘SKY’ 대학을 나와도 30~50차례 취업낙방이 기본이다. 좌절한 젊은이들은 언젠가는 날아보겠다는 ‘거위의 꿈’조차 잃어간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만들어냈듯이, 온라인상에는 온갖 악플·욕설로 서로에게 상처주기 바쁘다.

나라가 극도로 무기력해질 때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민간의 창의와 활력을 되살리도록 과감한 구조 개혁에 나서는 것이다. 위기를 극복한 나라와 위기에 주저앉은 나라가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기조는 공무원을 더 늘리고, ‘세금 알바’로 일자리 통계를 분식하고, 청년에게 수당 몇 푼 쥐여주는 것 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점점 계급화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극복할 노동 개혁은 일언반구도 없고, 되레 ‘노조 천국’을 만들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며 구조 개혁에 나서 ‘유럽의 병자’였던 나라를 되살린 것과 대비된다.

‘조국 사태’에서 확인했듯이 기회 불평등과 불공정은 상위 1%가 아니라 상위 20%의 문제로 넓혀 봐야 한다. 안정된 직장, 높은 보수의 20%와 그렇지 못한 80%로 나뉘는 ‘20 대 80 사회’의 단면이다. 그런 상위 20%가 자녀들을 유학, 특목고 등으로 엘리트 교육을 시키면서, 다른 이들의 자녀는 획일적 평준화로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 기회마저 봉쇄하려 든다. 의욕과 열정으로 창업·기술개발에 도전하려는 청년들을 주 52시간제의 장벽에 좌절하게 만든다. 이는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정책 폭력’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선거 승리에, 정부는 현금 살포에 혈안이다. 국가로부터 현금을 받는 국민이 1000만 명을 넘었고, 내년 예산안 중 현금 지원액만 54조원에 이른다. 국민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도록 정부가 의욕을 북돋우기는커녕 ‘국가의존형’ 국민을 양산하고 있다. 각자의 앞날이 불안한 나라는 미래도 없다. ‘비전 없는 나라’를 후세에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