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가 1000년도 아니고 2200년이나 존속한 건 대단한 기록이다. 고대 로마의 이 기록을 넘어선 나라는 아직 없다. 로마가 이렇게까지 장수(長壽)한 요인으로 꼽히는 건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도층의 솔선수범 전통이다.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로마제국 귀족들의 불문율이었다. 카르타고와 16년간 2차 포에니 전쟁을 치르는 동안 13명의 집정관(귀족계급을 대표한 최고위 공직자)이 직접 참전해 목숨을 바쳤다.

[이학영 칼럼] "나는 어떤데?"를 놓쳐버린 나라
자유민주주의 발상지인 영국이 입헌군주제를 지속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히는 것도 왕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철칙(鐵則)이다. 왕실 및 왕실에 속한 귀족 자녀들은 반드시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도록 내규를 운영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는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 때 헬리콥터 조종사로 참전했고, 찰스 왕세자의 차남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복무를 했다.

지도층이 올바른 향도(嚮導)가 돼 주느냐 여부가 국가 존속에 가장 중요한 변수임은 역사의 숱한 사례가 보여준다. 유감스럽게도 조선왕조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많이 거론된다. 519년을 버티기는 했지만 지배계층인 사대부 집단과 백성 사이에 이반(離反)이 심각했다. 군역을 비롯한 온갖 험한 일은 오로지 평민들 몫이었고, 사대부는 별천지의 존재였다. 백성을 헌신적으로 보살피고 돌본 사람도 있었지만, 파당(派黨)을 이뤄 군림하고 착취한 이들이 많았다.

이즈음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조국 파동’에서 엇나갔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행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스스로의 일탈에는 눈 감은 채 다른 사람의 행동에만 눈을 부릅뜨고 시비를 일삼는 것으로 존재를 과시했던 위선의 인간들 말이다.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라는 신조어는 그런 위선과 기만의 핵심을 짚어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교수 시절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트집 잡아 쏟아낸 독설이 한가득한데, 정작 자신과 가족이 저질러 온 특권적 반칙과 일탈행위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음이 드러나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이참에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꽤 많은 ‘조국’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는 사실이다. 교육부에서 확인한 것만으로도 지난 10년간 102명의 대학교수들이 논문에 미성년 자녀를 공동저자로 등재시켰고, 같은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딸에게 자기가 강의하는 수업을 듣게 하고는 최상위 학점을 준 교수가 수백 명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식인집단의 위선과 일탈은 이들이 사회의 등불을 자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똑같은 일인데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우기는 위선적 행태를 풍자하는 신조어 ‘내로남불’도 요즘 부쩍 회자되고 있다. ‘내로남불’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재단(裁斷)하는 잣대가 다를 때 나온다. 자기는 쏙 뺀 채 남을 향해 “네가 뭔데?”라며 시비를 걸지만, 정작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는 어떤데?”를 자문(自問)하는 성찰은 찾아볼 수 없다.

조선왕조를 몰락으로 몰고 간 사대부 집단의 행태가 전형적이었다지만, 본디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조선 성리학의 태두인 퇴계 이황은 자기 내면에 대한 공경, 즉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敬·경)을 학문의 핵심으로 꼽았다. 공(公)과 사(私)를 막론하고 남에게 폐를 안 끼치는 ‘제폐(除弊)’와 ‘물폐(勿弊)’를 실천했고, 제자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가르쳤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인들이 퇴계의 가르침을 접하고는 무릎을 쳤고, “(남에게) 폐 끼치지 말아라”를 교육칙어의 바탕으로 삼았다.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임진왜란 최고의 전리품은 퇴계사상을 수확한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국인들이 놓쳐버린 퇴계의 가르침을 일본인들이 철저하게 받아들여 생활문화로 녹여냈고, 그런 모습을 부럽게 바라봐야 하는 심정이 착잡하다. ‘조국 파동’을 우리가 잃어버린 정신유산을 되찾아 진정한 선진시민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는다면 그나마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지 않을까.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