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파트 내부 보고 삽니까"…강남권 중심 '묻지마 거래' 속출
“요즘 누가 집을 보고 계약합니까.”

직장인 장모씨(45)는 지난 20일 서울 반포동의 한 중개업소를 찾았다가 핀잔만 들었다. 자녀 학교를 위해 이 동네로 이사할 계획인 그는 주말에 여러 중개업소를 방문했다.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집 내부를 볼 수는 없다. 이 가격에 사려면 사고 말려면 말라”고 했다. “20억원 안팎인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할 수는 없다”고 하자 “이 동네에선 다 그렇게 계약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장씨는 “거주해야 할 집인데 보지도 않고 계약해야 한다는 소리에 황당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권에서 매물로 나온 집 내부를 보여주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로 신축이나 10년 이내 준신축 단지에서다. 절대적인 매도자 우위 시장이다 보니 집주인이 귀찮게 집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 것이다. 반포동 K공인 관계자는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서 있으니 가능한 일”이라며 “세입자는 귀찮다고 집을 안 보여주고, 집주인은 급할 게 없다 보니 자기 편한 방식으로 거래하려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민간택지에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기로 하자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1단지 전용면적 84㎡는 10일 26억원에 손바뀜했다. 지난달 27일 거래가(25억5000만원)에서 2주 만에 5000만원 뛰었다. 지금은 최고 28억원을 호가한다. 대치동 S공인 관계자는 “지난달 초부터 매수 문의 전화가 몰리면서 지금은 간단한 설명만 듣고 집도 안 보고 거래하는 분위기”라며 “신축 단지는 주택형이 규격화된 데다 수리할 부분이 크게 없어서 집을 보려는 매수자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재건축 단지도 이 같은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거주하는 경우가 드문 데다 투자 상품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대치동 J공인 관계자는 “은마아파트 같은 재건축 단지는 전용면적이 76·84㎡ 두 가지뿐인 데다 거주보다 투자 상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집을 직접 보고 거래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설명했다.

강남권 중개업소들은 지난 4월부터 완전히 매도자 우위 시장으로 전환됐다고 했다. 신만호 압구정동 중앙공인 대표는 “압구정동에선 올해 6월까지만 해도 앉은 자리에서 호가보다 1억원 높은 가격에 거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