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公 정규직 "비정규직, 시험 치러라"…勞·勞갈등으로 번진 고용세습

公기관 정규직 채용비리

연이은 채용비리 의혹에 기존 정규직들 거센 반발

"정규직 전환, 인건비만 수백억…고스란히 조합원들 피해"
비리 의혹 노조집행부·'무혈입성' 비정규직에 불만 증폭
"공채 다 무너뜨려" 일부는 무효화 주장까지…갈등 확산

< 국정조사요구서 제출 > 야3당 의원들이 22일 국회 의안과에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의 고용세습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양수 자유한국당, 김수민 바른미래당, 송희경 자유한국당,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정규직 전환에 드는 돈을 아까워해서 이기적이라고? 너희 (노동조합 집행부) 친인척을 정규직 시키려고 조합원들 피해 보게 하는 게 더 이기적인 것 아닌가?”(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관련 비리 의혹이 줄을 이으면서 기존 정규직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비리 주체로 지목되고 있는 노조 집행부와 친인척이란 이유로 정규직으로 ‘무혈 입성’한 비정규직 직원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노노(勞勞)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일부 직원은 이미 이뤄진 정규직 전환을 두고 무효화를 주장하고 있어 갈등이 확대될 전망이다.

◆“공채시스템까지 무너뜨리다니…”

‘고용 세습’ 의혹이 불거진 서울교통공사 노조 홈페이지에는 연일 정규직 조합원들의 항의글이 올라오고 있다. 22일 한 조합원은 “자리를 정규직화하랬지, 누가 다짜고짜 공채시스템을 다 무너뜨리고 조건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했느냐”며 “공채시험을 다시 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조합원은 “정규직 전환은 매우 중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조합원들의 투표 요구를 묵살하고 독자적으로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정규직 전환 과정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한 조합원은 “안전과 관련 있는 에스컬레이터 관리자 및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은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고, 안전과 관련 없는 인사처장 부인과 연관된 식당 등 복리후생 쪽을 정규직화한 것이야말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정규직 전환이 문제가 된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국토정보공사 등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기존 정규직 직원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직원들은 지난 19일 공사 국정감사장 앞에서 “정규직 전환 친인척 채용비리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인천공항이 지난해 비정규직 6903명 전원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자, 정규직 근로자들이 성명서를 내고 “청년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들어가는 공기업 일자리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승계하도록 하는 것은 기회 평등에 반한다”며 공개경쟁 채용 절차를 거쳐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끊임없이 나오는 비리 의혹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의 비리 의혹은 갈수록 확산하는 추세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국가스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사가 지난 8월 정규직 전환을 확정한 1203명 중 25명이 임직원의 부모, 동생, 자녀 등 친인척이었다.

한국전력 자회사와 산하기관에서도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한전 산하 한전의료재단이 운영하는 한일병원에서는 2급 부장의 자녀가 2015년 8월 기간제로 채용됐다가 2017년 1월 무기계약직으로, 2018년 8월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적십자사에선 직속 상사가 같이 일하던 후배 계약직 직원 면접을 직접 본 뒤 정규직으로 합격시킨 사례도 나왔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대한적십자사 서울서부혈액원 정규직 간호사 공채에서 이 혈액원 간호팀장은 계약직 간호사로 일하던 후배 두 명의 면접심사위원으로 들어가 모두 최종 합격시켰다. 한국세라믹기술연구원에서는 책임연구원의 배우자가 지난 1월 기간제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사실이 밝혀졌다.

지방 공기업 채용비리 의혹도 확산되고 있다.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는 SH공사의 정규직 채용 비리 의혹이 제기됐다. 민경욱 한국당 의원은 “SH공사의 전 인사처장 배우자, 현재 비서실장 친척 배우자, 비서실장 친척 이런 사람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는 제보가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대전시 산하 대전도시공사 노조원의 친인척이 해당 노조원과 같은 직종에 무기계약직으로 채용됐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채익 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5월 이후 입사한 사람 중 7명이 공사 노조원의 자녀 또는 형제·자매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비정상적인 고용 세습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국정감사장에서 “서울교통공사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숨길 일이 하나도 없고, 정말 잘못된 일이 있었다면 무엇이든 책임질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임도원/김일규/박진우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