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하고 있는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의지할 데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는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선배 원로들을 찾아 조언을 듣고 있다고 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 얘기를 듣고 언젠가 사석에서 이 전 부총리한테 물었다. “김 부총리가 소득주도성장 정책 방향을 놓고 청와대 정책 참모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데, 뭐라고 조언하시나요?” 이 전 부총리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가급적 대들지 말라고 해요.”

노무현 정부 때 경제부총리를 지내며 당시 청와대 ‘386 실세’(1980년대 대학 운동권 출신)들과 거친 싸움을 벌인 그로선 의외의 답변이었다. 이유는 이랬다. “저야 공직을 그만두고 민간에서 10년 넘게 하고 싶은 일 실컷 하다 다시 공직에 들어갔기 때문에 언제 그만둬도 미련이 없었는데, 지금 김 부총리는 같나요. 그만두면 3년은 갈 곳도 없잖아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니 소용없을 거라는 다소 자조적인 말로 들렸다.

관료 개입 때문에 실패?

급기야 김 부총리의 사의설까지 흘러나왔다. 솔직히 그도 지쳤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상황이 쉽게 개선되지 않으리란 걸 관료 생활을 40년 가까이 해본 사람은 동물적으로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정부는 궁지에 몰렸다고 결코 관료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것 같지가 않다.

이 전 부총리도 여기에 동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정부 때 중장기 개혁방향이 집약된 ‘2030 플랜’을 만든 청와대 행정관들이 지금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으로 들어가 있어요. 이들은 노무현 정부 때 본인들의 개혁이 나 같은 관료들의 개입 때문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매우 강합니다. 실패를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어요. 위기에 몰릴수록 결집력이 강합니다. 관료한테 절대 주도권을 안 내놓을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역효과로 일자리와 분배지표가 망가지고 있는 것에 김 부총리가 한 주 전 당·정·청 회의에서 ‘방향 수정 검토’를 한마디 언급했다가 청와대 참모들과 여당 지도부에 난타를 당했다. 그와 갈등을 빚고 있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역시 지칠 법도 하지만, 겉으론 한 치의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지난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나와 야당 의원들의 공격에 전혀 흥분하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조목조목 설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한참 더 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화되는 지표 방치했다간…

장 실장은 26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최근 고용·분배 지표 악화에 대해 오히려 “소득주도성장을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는 역설로 받아들인다”고 주장했다. 일자리와 소득분배 악화는 정책적 실패 때문이 아니라 과거 정부부터 내려온 구조적인 문제이고, 소득주도성장을 더 강화해야 풀릴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의 무리한 정책으로 고용·분배 악화라는 역효과가 빚어지고 있다는 대다수 전문가의 판단과는 너무나도 다른 인식이다.

이 전 부총리는 “장담하건대 이 정부가 정책을 수정하지 않으면 올해 말이나 내년에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장과 고용의 괴리현상이 나타나면 끝장이다. 돈 몇 푼 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도 했다. 그가 이 얘기를 한 건 벌써 3개월 전인 지난 5월이다. 그 이후 경제지표가 급속히 나빠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전 부총리의 경고가 적중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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