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꼴찌의 기적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한국인은 ‘타인을 믿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3명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70%가 ‘그렇다’고 했다. 더욱 놀라운 건 한국인은 정부를 개인보다 신뢰하지 않으며 법이나 제도가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에서도 한국은 지난해 177개국 중 52위에 그쳤다.

지난주 국민권익위원회의 공공기관 청렴도 발표가 있던 날 눈시울이 잠시 뜨거워졌다. 서초구의 공직 청렴도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단지 1위라는 사실보다 청렴도 꼴찌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직원들과 땀을 쏟았던 순간이 떠올라 더 감격스러웠다.

부끄럽지만 서초구의 청렴도는 2012년 서울시 최하위였다. 구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공직자가 구민을 위해 일한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필자는 서울시 간부였을 때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함께 서울시 청렴도를 1위로 끌어올린 적이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노력한 결과 구청장 취임 첫해 12위에서 2015년 9위, 2016년 7위로 올라섰고 마침내 1위라는 대반전을 이뤄냈다.

“햇볕은 가장 좋은 치료 약이다”는 말이 있다. 서초구가 청렴도 1위로 가는 길도 투명성에서부터 출발했다.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주민 의견을 수시로 반영해 나갔다. 건축이나 보조금 지원 등 부패 취약 분야는 민원인들이 ‘청렴콜’로 직접 모니터링하게 했다. 금품 향응 도박 등의 비리는 징계 수위를 대폭 높이고, 특히 음주운전은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로 서릿발 같은 의지를 보였다.

진정한 청렴은 누가 시키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직원 스스로 청렴 서신 릴레이를 하고, 간부는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배격하는 결의를 했다. ‘체인징 데이’도 효과를 봤다. 부서장이 자리를 바꿔 일하니 협업도 되고 서로의 업무가 공개돼 투명성이 높아졌다. 투명한 인사 제도로 부정청탁을 배제하고 예측 가능한 인사를 했더니 직원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그에 따라 직원들이 더 친절해지고 부패에서 멀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졌다.

혼자 꾸면 꿈이지만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함께 똘똘 뭉쳐 꿈 같은 기적을 일군 직원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이제는 높은 청렴도를 유지해야 하는 새로운 목표가 기다리고 있다.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맨다. 청렴은 언제나 ‘네버 엔딩’ 스토리다.

조은희 < 서울 서초구청장 gracecho@seocho.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