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싸움꾼' 퀄컴의 두 얼굴…중국에는 아낌없이 기술 지원
중국에서 2년 전 1조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았던 세계 최대 통신용 반도체 기업 퀄컴이 중국에 각종 기술 협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거대 시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퀄컴을 비롯한 자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의 기술 유출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합작사 설립 등 오히려 지원 늘려

2015년 2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퀄컴이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로부터 휴대폰 한 대당 판매가격의 5%를 통신용칩 로열티로 받는 것이 ‘특허권 남용’이라며 9억7500만달러(약 1조990억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에 부과한 역대 최대 규모이자 퀄컴의 중국 내 연매출의 8%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특허 싸움꾼' 퀄컴의 두 얼굴…중국에는 아낌없이 기술 지원
당시 퀄컴은 중국 당국에 이의 제기를 하지 않고 해당 조치를 받아들였다. 문제가 된 로열티는 휴대폰 판매가격 65%에 대해서만 3.5~5%를 받기로 합의했다. 세계 곳곳에서 ‘특허 갑질’을 벌인다고 비판받아온 퀄컴으로서는 의외의 대응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같은 이유로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조원 과징금 처분을 받은 뒤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퀄컴은 오히려 중국의 ‘기술 강국’ 마스터플랜에 자금과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퀄컴은 지난 5월 스마트폰칩 개발을 위해 중국 국영기업과 합작하기로 결정했다. 한국과 대만 업체에 위탁한 반도체 생산도 중국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1월에는 중국 구이저우성(省) 정부와 협약을 맺고 서버용 칩 설계·개발 합작사를 설립했다. 자본금 18억5000만위안(약 3000억원) 규모의 구이저우화신통세미컨덕터테크놀로지 지분 55%는 구이저우 산하 투자기관이, 45%는 퀄컴이 보유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맞춰 구이저우성 성도(省都) 구이양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지정했다. 이 산업단지에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주요 IT 기업이 서버를 구축하고 있다. NYT는 합작기업에서 서버용 칩을 생산하면 중국 정부가 칩 수급을 통제하고 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술 유출 위험에도 ‘페달’ 밟아야

기술 유출 위험에도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는 미국 기업은 퀄컴만이 아니다.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는 칭화홀딩스 유니스플렌더와 합작해 네트워킹 서버 저장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인텔도 퀄컴에 대항한다는 전략에서 중국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첨단 휴대폰 칩 개발에 나섰다. IBM은 은행 전산사업에 필요한 기술을 중국 측에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시장 진출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돈도 기술도 다 내놓겠다는 자국 IT 기업을 바라보는 미 정부의 심경은 복잡하다. 중국이 이런 투자 유치와 기술 확보로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의 분야를 장악해나가면 미국으로선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가능성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준비하고 있거나 미 의회가 외국 기업에 기술이전을 제한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는 배경이다.

미국의 국가안보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제임스 루이스 미국전략국제연구센터 연구원은 “국방,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첨단 칩 제조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미국 기업들이 중국시장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 상황에선 중국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얘기다.

윌리 쉬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퀄컴은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균형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어 중국 정부와 협조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