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8월6일 오후 5시1분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지난 3일 삼성전자의 신용등급 전망을 종전 ‘안정적(stable)’에서 ‘긍정적(positive)’으로 높였다. 2005년 이후 12년 동안 묶어놨던 신용등급을 수년 내 올릴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의미다. 경쟁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달 21일 지금의 무디스와 같이 ‘A+’로 매겼던 신용등급을 4년 만에 ‘AA-’로 전격 상향한 지 2주 만에 나온 결정이다.

기관투자가들의 시선은 이제 2006년 이후 11년째 기존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또 다른 신용평가사 피치에 쏠리고 있다. 다른 두 경쟁사와 비슷한 평가논리를 펴면서도 삼성전자의 신용등급 상향 가능성에 줄곧 부정적인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 부정적인 피치

"삼성은 절대 AA급 못 올라가!" 라던 미국 신평사 '피치의 굴욕'
뉴욕과 런던에 본사를 둔 피치는 2012년 ‘삼성-실적 개선에도 상향 가능성은 낮다(Samsung-Limited Room for Upgrade Despite Performance)’는 내용의 평가의견을 발표했다. 당시 삼성전자 채권이 글로벌 기관투자가 사이에서 한국 정부 채권보다 비싸게 거래되면서 부풀어오른 신용등급 상향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보고서였다.

피치는 보고서에서 “더 이상의 좋은 평가는 주기 어렵다”는 논리를 펼치며 2006년 삼성전자에 부여한 ‘A+’ 등급을 사실상 반도체·휴대폰 하드웨어사업자의 ‘등급 천장(rating ceiling)’으로 간주했다. 핵심 근거는 세 가지였다. 삼성전자 주력사업인 △반도체·휴대폰업황의 변동성이 크고 △현금이 많아도 빠져나가는 설비투자 비용이 상당하며 △20%를 웃도는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IBM 등 다른 기술업체와 비교해 영업이익률(2007~2011년 평균 8.6%)이 현저하게 낮다는 이유였다.

피치의 이런 논리는 2012년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전년(15조원)의 두 배에 가까운 29조원으로 불어나자 도전에 직면했다. 삼성전자 신용등급을 재고해달라는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문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이에 피치는 2013년 6월 질의응답 형식 보고서를 통해 “삼성이 아직 진정한 혁신가(true innovator)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반도체업계가 소위 ‘슈퍼 사이클’로 불리는 대호황에 접어든 이후에도 피치의 등급 평가 논리는 바뀌지 않았다.

◆달라지는 신용평가사들의 기준

무디스가 새로 내놓은 삼성전자 등급 평정 보고서는 그동안 신용평가사들이 하드웨어 기술업체에 가졌던 고정관념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무디스는 △삼성전자가 스스로 기술장벽을 더 높이 쌓아 영업 안정성이 커졌고(업황 변동성 부담이 낮아졌고) △설비투자 지출이 영업현금흐름 대비 85%에서 60%로 낮아지는 경영효율성을 달성했다고 평가하면서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14% 수준에서 올해 21%로 뛸 것으로 전망했다. 올 2분기에 14조원을 웃도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과 23%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한 데 대해선 “기술력 측면에서 삼성전자의 리더십이 더 강해진 결과”라며 기술적 혁신이 업태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국내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삼성전자 실적이 꾸준히 개선되면서 피치가 그동안 등급 상향을 거부하며 내세웠던 논리들이 모두 깨지고 있다”며 “업황 변동성이 크고 이익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는 기존 등급을 고집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태호/서기열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