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영업왕'에서 '은퇴 전도사'로…두진문 시안파트너스 회장
젊은 시절 오직 성공만을 위해 달리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영업의 전설’이라고 칭송받았다. 삶에 없어선 안 될 것만 팔았기 때문이었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30대 중반에 기업 임원이 됐다. 퇴사 후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창업했다가 실패했다. 자살의 유혹까지 느꼈다가 되살아났다. 이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인생의 후반부와 마지막을 제대로 갈무리하는 법을 설파한다. 웅진코웨이 사장 출신인 두진문 시안파트너스 회장(56·사진)이다. 그는 지난 10월 자신의 은퇴설계 철학을 담은 책 두진문의 은퇴혁명을 출간했다.

최근 서울 양재동 시안파트너스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두 회장은 “인생의 전반기는 웰빙을 키워드로 성공했다”며 “지금은 행복하게 나이 들며 새 인생을 준비하는 ‘웰에이징(well aging)’과 죽음을 더 이상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웰다잉(well dying)’ 문화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몸담고 있는 시안파트너스에선 유명 건축가 승효상 씨와 함께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할 수 있는 도시적 공간’이란 테마로 경기 광주시 오포읍에 야외 납골당 ‘천의 바람’을 짓고 있다. 천의 바람은 약 1만4800㎡ 부지에 유해 3만여기를 수용할 수 있다. 현재 분양 중이며 내년 1월17일 문을 열 예정이다.

1983년 웅진출판에 입사하며 세일즈맨의 길을 걷기 시작한 두 회장은 국내 대표 학습지 중 하나인 웅진씽크빅, 후발 주자로 시작했다가 유명 브랜드가 된 코리아나화장품, 국내 정수기업계에 렌털 및 정수기 관리 전담 여성 사원을 처음 도입한 웅진코웨이 등에서 히트상품을 잇따라 터뜨렸다. 이 가운데 웅진코웨이 정수기는 그가 꼽는 ‘인생의 작품’이다. “‘깨끗한 물’은 소비자들에게 확 와 닿는 간결한 메시지였어요. 수돗물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질까봐 걱정하는 공무원들에겐 정수기와 생수 문화가 먼저 발달한 미국과 일본, 독일, 프랑스를 돌아다니며 사 온 정수기와 생수를 직접 보여주며 ‘물 관리는 잘되는데 오래된 수도 파이프와 물탱크까지 나라에서 일일이 관리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설득했죠.”

2001년 자신의 영문명 이니셜을 따서 회사명을 지은 정수기 렌털회사 JM글로벌을 창업했다. 처음엔 잘나갔으나 사업 시작 1년여 만에 부도를 맞았다. 그는 “당시 직원들 인건비와 세금을 다 정산하고 나니 완전히 빈털터리가 됐다”며 “죽으려는 생각으로 한밤중 서해안고속도로에서 시속 230㎞로 달렸다”고 회상했다. “자동차 안에서 갑자기 전업주부인 아내와 두 아들, 어린 막내딸 모습이 떠올라 가속페달을 밟던 발로 브레이크를 밟았어요. 그때부터 새 삶이 열렸습니다. 저는 사회에서 ‘강제 은퇴’를 당했지만, 그 대신 가족의 사랑을 되찾았죠.”

두 회장은 그 후 한국은퇴설계연구소의 회장으로 취임하고, 재단법인 시안과 손잡고 납골당 분양사업도 시작했다. 그는 “은퇴와 죽음에 대해 말하길 꺼리는 한국 특유의 문화가 제대로 된 인생 2막, 3막 설계와 장례 대비를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웰빙과 웰에이징, 웰다잉은 결국 모두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어요. 삶의 마무리에 대해 활발히 논하는 환경이 돼야 진정 잘살 수 있죠. 각자의 직업에서 얻은 경험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며 준비하는 자세가 훌륭한 노후생활을 누리게 합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