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아마추어 대선주자들 때문에 '대외정책 입문' 조언들 잇따라

미국에서 4년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공식 취임을 앞둔 당선자에게 연구보고서나 개인 기고문 등 각종 형식으로 국내외 정책 제언과 조언들이 봇물을 이룬다.

이번에는 내년 11월 선거가 거의 1년이나 남아 아직 각 당의 대선 후보를 결정할 예비선거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의 차기 대통령께 드리는 비망록' '차기 대통령이 외교정책에 관해 우선 알아야 할 5개항' 등과 같은 제언들이 미국 언론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새 대통령이 맞닥뜨릴 도전은 엄중한데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면면이 예전보다 불안한 인물들이어서일까?
"대선 경마장에서 뛰는 완전 아마추어들"을 위해 `외교정책 입문 5개 항'을 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스티븐 월트 국제정치학 교수는 "극단적 자기중심주의자 도널드 트럼프" 등은 물론 국정 경험이 풍부한 힐러리 클린턴조차 이라크 침공 찬성 등 행적으로 봐선 썩 미덥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비망록'과 '5개 항'은 필자들이 각각 네오콘(신보수주의) 성향과 현실주의자라는 차이를 반영하고 있지만, 특이하게 9·11 테러공격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을 주도했던 네오콘 성향의 필자들도 "미국의 관여와 군사력 사용을 동일시해선 안 된다"며 국제문제 해결에서 군사력 사용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지난 9일자 포린 폴리시에 실린 월트 교수의 5개 항은 미국의 새 대통령이 "군사력의 필요성과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면서 "개전은 (어떤 악마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도 결국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낳은 '악마'라는 게 현실주의 국제정치론자들의 주장이다.

IS의 파리 테러공격 후 미국에선 IS 격퇴를 위해 지상군을 투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고, 젭 부시 전 플로리다주지사를 비롯한 공화당 대선주자들도 지상군 투입을 주장하고 있다.

월트 교수는 "군사력은 그 궁극적인 사용 결과를 예측하기 거의 불가능한 날이 무딘 도구"일 뿐 아니라 "파괴는 할 수 있어도 창조는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군이 외국 땅에서 기존 정권을 무너뜨릴 수는 있어도 미군이 떠난 자리에 남은 혼돈을 수습할 효율적인 통치제도들은 외부에서 이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망록'을 공동으로 작성한 존 카일, 조 리버만 전 상원의원도 차기 대통령에게 "총 한 방 쏘지 않고 미국민과 외국민들에게 똑같이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대외정책) 수단들이 많다"며 "군사력은 대외관계에서 하나의 도구일 뿐이며 우리의 첫 번째 선택이 돼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두 사람은 네오콘 집결지인 미국기업연구소(AEI)가 초당적 대외정책 모색을 내세워 주도하는 '미국국제주의프로젝트'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두 사람은 비망록에서 "매파든 비둘기파든, 좌파든 우파든" 이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모두 "미국은 외교적 해결과 공공외교를 최우선시하고 핵심가치로 인권에 다시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며 '소프트 파워'가 세계에서 미국의 지도권을 인정받는 데 첩경임을 강조했다.

네오콘이 9·11후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아프간과 이라크 침공을 주도할 때만 해도 경쟁자가 없는 압도적 군사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현지의 정권을 몰아내면 "인권과 민주주의가 확산될 것"이라고 낙관했던 것에 비해선 매우 '현실적'인 입장이다.

네오콘이 벌인 전쟁들의 전제와 결과에 대한 반대론과 비판, 야유들이 곧 월튼 교수의 `5개항'이다.

그는 네오콘과 현재 공화당 대선주자들이 내비치는 국제정치관인 '선악의 대결'이나 '문명충돌론'을 일축하고 미국도 다른 나라들도 모두 자국의 안보를 최우선시하며 자국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만큼 타국의 행동을 악마화 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시리아에서 한 일은 미국이 중남미 '뒷마당'에서 해온 일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또 네오콘은 미국의 군사력과 인권, 민주주의 같은 가치를 '미국 예외주의'로 내세우고 있으나, "미국이 정말 예외적인 것은 미국이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데 따른 무임 안보"라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미국은 인근에 강한 적대국들이 없어서 세계 온갖 곳에서 각종 이상주의적인 `십자군' 활동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혹시 대외 군사개입이 잘못되더라도 그 낙진은 먼 미국에까지 미치지 않고 미국이 개입한 나라들만 뒤집어쓰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미국이 힘을 쓰려 하면 미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마저 그 역효과를 우려하게 된다.

" 미국의 이라크 침공 계획에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반대했던 것도 "종국적으론 프랑스에 손해가 될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것"을 우려했던 것이라는 것이다.

월튼 교수는 미국의 군부와 정보기관 등 "가장 좋은 부하들도 늘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다"며 정부 기관들이 보고하는 모든 것에 대해 "철저히 의심해보라"고 조언했다.

역시 이라크 침공 결정의 근거가 됐던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 정보보고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것을 가리킨다.

그는 "어떤 대통령이든 환기 차원에서라도 기존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외부인들을 이따금 만날 것"을 주문했다.

그는 또 "두려움과 자신감의 치명적인 조합은 종종 나라를 어리석은 전쟁들로 이끈다"며 "주변 참모, 이익단체, 외국의 우방, 경쟁 정치인 등이 나라가 거대한 위험에 직면했다고 떠들 때" 대통령은 그 진위를 가릴 거짓말탐지기와 그 말들을 경계할 수 있는 정신적 비상벨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심처럼, 파리 테러 공격 이후 발작적인 IS 공포감의 확산과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이 결합할 때 나타날 결과를 경계한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y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