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매케인은 영웅이 아니다.포로가 됐기 때문에 영웅이 된 것이다.나는 붙잡히지 않는 사람이 더 좋다."

미국 공화당 경선후보 도널드 트럼프(69)가 매케인(79) 상원의원을 비난하면서 불거진 참전용사 모욕 논란에 미 정치권이 격앙한 가운데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20일(현지시간) '존 매케인이 포로일 때 도널드 트럼프는 뭘 하고 있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극명히 대비되는 매케인과 트럼프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매케인은 1967년 10월 25일 하노이 상공에서 격추됐다.

그는 비상탈출 때 충격으로 두 팔과 다리 하나가 부러진 채 낙하산에 매달려 호수에 떨어졌다.

베트남 병사들은 익사 위기에 몰린 매케인을 밖으로 끌어내고서 어깨를 개머리판으로 때려 부수고 대검으로 발을 찍었다.

모진 고문이 뒤따랐으나 죽지는 않았다.

부친이 해군장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북베트남 당국이 협상력을 높이려고 살려둔 것 같다고 매케인은 나중에 추측했다.

매케인은 진통제, 마취제 없이 수술을 받았다.

현지 의료진이 조각난 팔다리뼈를 제대로 껴맞추지 못해 오랜 시간을 허둥댔을 뿐만 아니라 실수로 무릎 인대까지 절단했다.

만신창이가 된 채 감방에서 멀건 호박죽과 빵 조각으로 연명하던 매케인의 체중은 70㎏에서 45㎏까지 줄었다.

그러나 1968년 봄이 되자 그는 다시 걸으려고 좁은 감방에서 혼자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매케인은 부친의 영향력으로 북베트남 당국으로부터 조기 석방을 제안받았으나 먼저 온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이를 거부했다.

결국 5년 뒤 1973년 3월 14일 석방됐다.

평생 팔을 머리 위로 들 수 없는 장애를 안고 귀국했다.

매케인이 감방에서 다시 걸음걸이를 연습하던 1968년, 트럼프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전학생으로서 졸업한 21세 청년이었다.

그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4년부터 학업을 이유로 네 차례에 걸쳐 베트남전 징병을 유예받았다.

병역기피 논란에 대해 한 방송 인터뷰에서 "뽑혔다면 자랑스럽게 복무했겠지만 추첨 번호가 제일 뒤에 있어서 참전 기회가 오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트럼프는 대학에서 졸업하던 무렵에 벌써 자산이 20만 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40만 달러(약 16억2천만원)에 이른다.

부친의 부동산업을 물려받기로 하고 세입자들에게 수금하러 다니는 게 당시의 일이었다.

트럼프는 1971년 뉴욕 맨해튼으로 집을 옮기면서 자신의 전성기가 열렸다고 자서전에서 털어놓았다.

아버지의 리무진을 몰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뉴욕시에서 최고 부유층만 다닐수 있다는 고급클럽에 가입해 밤마다 젊은 미녀들과 어울렸다.

부유한 70대 노인이 스웨덴 금발 여성 3명과 함께 다니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그런 클럽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매케인이 감옥안에서 굶고 있을때 트럼프는 파산한 호텔을 매입, 재개발하는 사업을 구상중이었고 매케인이 베트남 당국의 특별 대우를 거부할때 트럼프는 그런 특별 대우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고 있었다.

트럼프는 부친과 함께 기부금을 앞세워 정치인들과 친분을 쌓으며 사업 확장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매케인이 베트남전 영웅으로 귀국하던 1973년 트럼프의 기업은 인종과 피부색을 이유로 임대차 계약을 차별한 정황(공정주택법 위반)이 잡혀 미국 법무부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