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트렌드] LG의 진화한 '전자 동굴'…풀죽은 와인의 숨결도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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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의 IT's U - 2세대 디오스 와인셀러 두달간 써보니
12년 이어진 LG의 '와인 사랑'
농밀한 보디감에 부케 살아있어
소믈리에 관리한 와인 마시는듯
스마트 인버터 컴프레서 채용
최적 냉기 유지에 소음도 줄여
12년 이어진 LG의 '와인 사랑'
농밀한 보디감에 부케 살아있어
소믈리에 관리한 와인 마시는듯
스마트 인버터 컴프레서 채용
최적 냉기 유지에 소음도 줄여
벌써 덥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까지 덮친 올여름 폭염은 사상 최악일 거라고 한다. 누군들 좋겠냐만은 와인애호가의 시름은 더 깊어지는 때다.
와인은 습도가 적당하고 온도가 낮고 어두우며 진동이 없는 곳을 좋아한다. 기온은 약 13도, 습도는 70%로 유지되는 곳이다.
습도가 중요한 이유는 코르크 마개 때문이다. 코르크가 마르면 와인 병 입구 사이에 미세한 틈이 생긴다. 그러면 공기 중 산소가 와인 맛을 변질시킨다. 진동도 없으면 좋다. 와인이 충격을 받으면 여러 분자구조가 흔들려서 산화가 촉진되고, 미네랄의 섬세함과 향을 반감시킨다. 직사광선도 와인을 변질시킨다. 흔히 보는 와인셀러 유리가 자외선을 차단하는 암갈색으로 코팅된 이유다.
그래서 동굴은 인류가 찾은 최적의 와인저장소였다. 하지만 현대 도시인은 동굴은커녕 와인 한 병 파묻을 땅 한 뼘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태어난 제품이 ‘전자 동굴’, 와인셀러다.
LG, 12년 개발 ‘뚝심’
국내 와인셀러 시장은 2000년 웰빙 바람과 함께 열렸다. 초기 시장은 고가 수입품이 주류였다. 펠티어 반도체 기술이 핵심이었다. 저항 소재를 써서 한쪽 면은 뜨겁게, 반대쪽은 차갑게 만들어 냉기를 만들었다.
외국산이 장악했던 국내 시장에 2003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세했다. 삼성전자는 100만원대 저가 제품으로 대중화를 노렸지만 몇 년 안 돼 사업을 접었다.
LG전자는 2003년 7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처음 와인셀러를 내놨다. 펠티어가 아닌 김치냉장고 컴프레서를 응용했다. 2004년 ‘LG 와인셀러’ 3종을 내놓았다. 진동을 세계 최저 수준인 0.8갈(gal)로 낮춘 스테디 컴프레서를 자체 개발했다.
2005년 ‘디오스 와인셀러’로 거듭났다. 당시 김쌍수 대표의 디오스 프미리엄 브랜드 확장 전략이었다. 심은하, 김희선, 송혜교, 고현정 등 최고 여배우를 광고모델로 기용했다. LG가 와인셀러를 개발한 지 12년째인 올해 디오스 와인셀러는 10년 역사의 1세대 여정을 마치고 2세대로 거듭났다.
2세대, 2개월 동안 써보니
2세대 와인셀러(43병용 125만원)를 2개월 넘게 써봤다. 발효음료인 와인은 하나의 생명체다. 숨을 쉬면서 숙성되고, 주변 온도 변화에 따라 포도 본연의 맛과 향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부케(향)를 뿜어낸다. 제대로 오래 숙성된 빈티지 와인 가격이 더 높은 이유도 마셔보면 깊이나 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미세한 차이를 경험하기 위해 수십만~수백만원을 지급하는 이들이 와인 애호가다.
와인셀러의 치료 능력이 궁금했다. 기자가 저가에 구입한 프랑스 코트 뒤 론 빌라주급 와인 2병을 셀러에 넣었다. 이 와인은 냉장 배송을 하지 않아 소위 펄펄 끓는 고생을 겪은 것들이다. 운송 컨테이너 내부의 고온에다 격렬한 진동에 시달려 폭삭 늙어버렸다. 코르크까지 와인이 번졌고, 맛은 앙상했다. 와인 셀러에 넣은 지 한 달이 지난 뒤 풀이 죽었던 와인 숨결이 어느 정도 살아났다. 물론 고생한 티는 남았지만 싱싱했던 시절의 향취와 복잡미는 확인할 수 있었다.
함께 보관한 독일 라인가우와 이탈리아 피에몬테 화이트 와인을 마실 때 ‘와인셀러가 제값을 하는구나’라고 느꼈다. 원래 미네랄과 복잡미가 좋기로 유명한 와인들이라 보관상태와 온도가 중요하다. 농밀한 보디감에 산미, 특유의 유질감과 화하게 느껴지는 부케가 살아있었다. 고급 와인바에서 소믈리에가 관리한 와인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두 달 넘게 써본 결론은 든든하고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집안에서 묵묵히 내 소중한 와인을 지키고 있는 전용 동굴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43병 용량이지만 실제 25병 내외밖에 들어가지 않는 점은 아쉬웠다. 보르도형, 부르고뉴형, 독일형, 하프형, 매그넘형 등 와인은 병 크기가 제각각이다. 선반을 모두 뺀 뒤 쌓아두기만 하면 43병도 가능하지만 원하는 와인을 넣고 빼기가 어려워진다.
스마트해진 컴프레서
2세대는 핵심 부품인 컴프레서가 진화했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1세대 마지막 제품은 여전히 스테디 컴프레서를 썼다. 하지만 올해 나온 2세대는 스마트 인버터 컴프레서를 처음 적용했다. 환경 조건에 따라 최적의 운전을 한다. 제품 안팎의 다양한 센서로 작동 시간대와 문을 여닫는 횟수까지 따로 계산해 최적의 냉기를 유지한다. 전력 소모뿐만 아니라 소음도 5데시벨 더 줄였다. 도서관보다 낮은 정도로 방안에 놓고 써보면 와인셀러가 정상 작동하는지 의아할 정도로 조용했다.
LG의 유별난 와인 사랑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와인셀러를 개발한 대기업은 LG전자뿐이다. 와인셀러는 효자 제품이 아니다. 판매량 많지 않아 이익이 별로 안 남아서다. 하지만 “디오스 와인셀러는 믿을 수 있다는 명성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새 제품을 내놓는다”고 개발담당 직원은 말했다. LG의 컴프레서 기술 메카인 창원 공장에서 전량 생산할 만큼 완성도도 꼼꼼하게 따진다.
LG의 유별난 와인사랑은 2007년 LG상사가 100% 투자해 와인유통전문회사 ‘트윈와인’을 설립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비록 2012년 문을 닫기는 했지만 와인 열풍을 예감한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의 지시로 세운 회사였다. 구본무 LG 회장과 구 부회장은 재계에 널리 알려진 와인 애호가다.
LG 곤지암리조트 내 레스토랑 라그로타는 10만명의 와인을 저장할 수 있는 동굴 저장소로 유명하다. 2013년 세계적 와인전문지인 와인스펙테이터 ‘2글라스’로 꼽힌 곳이다. 중장년층에 인기를 끌고 있는 폴더형 스마트폰의 이름 역시 ‘와인 스마트’다.
김민성 기자 mean@hankyung.com
와인은 습도가 적당하고 온도가 낮고 어두우며 진동이 없는 곳을 좋아한다. 기온은 약 13도, 습도는 70%로 유지되는 곳이다.
습도가 중요한 이유는 코르크 마개 때문이다. 코르크가 마르면 와인 병 입구 사이에 미세한 틈이 생긴다. 그러면 공기 중 산소가 와인 맛을 변질시킨다. 진동도 없으면 좋다. 와인이 충격을 받으면 여러 분자구조가 흔들려서 산화가 촉진되고, 미네랄의 섬세함과 향을 반감시킨다. 직사광선도 와인을 변질시킨다. 흔히 보는 와인셀러 유리가 자외선을 차단하는 암갈색으로 코팅된 이유다.
그래서 동굴은 인류가 찾은 최적의 와인저장소였다. 하지만 현대 도시인은 동굴은커녕 와인 한 병 파묻을 땅 한 뼘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태어난 제품이 ‘전자 동굴’, 와인셀러다.
LG, 12년 개발 ‘뚝심’
국내 와인셀러 시장은 2000년 웰빙 바람과 함께 열렸다. 초기 시장은 고가 수입품이 주류였다. 펠티어 반도체 기술이 핵심이었다. 저항 소재를 써서 한쪽 면은 뜨겁게, 반대쪽은 차갑게 만들어 냉기를 만들었다.
외국산이 장악했던 국내 시장에 2003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세했다. 삼성전자는 100만원대 저가 제품으로 대중화를 노렸지만 몇 년 안 돼 사업을 접었다.
LG전자는 2003년 7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처음 와인셀러를 내놨다. 펠티어가 아닌 김치냉장고 컴프레서를 응용했다. 2004년 ‘LG 와인셀러’ 3종을 내놓았다. 진동을 세계 최저 수준인 0.8갈(gal)로 낮춘 스테디 컴프레서를 자체 개발했다.
2005년 ‘디오스 와인셀러’로 거듭났다. 당시 김쌍수 대표의 디오스 프미리엄 브랜드 확장 전략이었다. 심은하, 김희선, 송혜교, 고현정 등 최고 여배우를 광고모델로 기용했다. LG가 와인셀러를 개발한 지 12년째인 올해 디오스 와인셀러는 10년 역사의 1세대 여정을 마치고 2세대로 거듭났다.
2세대, 2개월 동안 써보니
2세대 와인셀러(43병용 125만원)를 2개월 넘게 써봤다. 발효음료인 와인은 하나의 생명체다. 숨을 쉬면서 숙성되고, 주변 온도 변화에 따라 포도 본연의 맛과 향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부케(향)를 뿜어낸다. 제대로 오래 숙성된 빈티지 와인 가격이 더 높은 이유도 마셔보면 깊이나 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미세한 차이를 경험하기 위해 수십만~수백만원을 지급하는 이들이 와인 애호가다.
와인셀러의 치료 능력이 궁금했다. 기자가 저가에 구입한 프랑스 코트 뒤 론 빌라주급 와인 2병을 셀러에 넣었다. 이 와인은 냉장 배송을 하지 않아 소위 펄펄 끓는 고생을 겪은 것들이다. 운송 컨테이너 내부의 고온에다 격렬한 진동에 시달려 폭삭 늙어버렸다. 코르크까지 와인이 번졌고, 맛은 앙상했다. 와인 셀러에 넣은 지 한 달이 지난 뒤 풀이 죽었던 와인 숨결이 어느 정도 살아났다. 물론 고생한 티는 남았지만 싱싱했던 시절의 향취와 복잡미는 확인할 수 있었다.
함께 보관한 독일 라인가우와 이탈리아 피에몬테 화이트 와인을 마실 때 ‘와인셀러가 제값을 하는구나’라고 느꼈다. 원래 미네랄과 복잡미가 좋기로 유명한 와인들이라 보관상태와 온도가 중요하다. 농밀한 보디감에 산미, 특유의 유질감과 화하게 느껴지는 부케가 살아있었다. 고급 와인바에서 소믈리에가 관리한 와인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두 달 넘게 써본 결론은 든든하고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집안에서 묵묵히 내 소중한 와인을 지키고 있는 전용 동굴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43병 용량이지만 실제 25병 내외밖에 들어가지 않는 점은 아쉬웠다. 보르도형, 부르고뉴형, 독일형, 하프형, 매그넘형 등 와인은 병 크기가 제각각이다. 선반을 모두 뺀 뒤 쌓아두기만 하면 43병도 가능하지만 원하는 와인을 넣고 빼기가 어려워진다.
스마트해진 컴프레서
2세대는 핵심 부품인 컴프레서가 진화했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1세대 마지막 제품은 여전히 스테디 컴프레서를 썼다. 하지만 올해 나온 2세대는 스마트 인버터 컴프레서를 처음 적용했다. 환경 조건에 따라 최적의 운전을 한다. 제품 안팎의 다양한 센서로 작동 시간대와 문을 여닫는 횟수까지 따로 계산해 최적의 냉기를 유지한다. 전력 소모뿐만 아니라 소음도 5데시벨 더 줄였다. 도서관보다 낮은 정도로 방안에 놓고 써보면 와인셀러가 정상 작동하는지 의아할 정도로 조용했다.
LG의 유별난 와인 사랑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와인셀러를 개발한 대기업은 LG전자뿐이다. 와인셀러는 효자 제품이 아니다. 판매량 많지 않아 이익이 별로 안 남아서다. 하지만 “디오스 와인셀러는 믿을 수 있다는 명성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새 제품을 내놓는다”고 개발담당 직원은 말했다. LG의 컴프레서 기술 메카인 창원 공장에서 전량 생산할 만큼 완성도도 꼼꼼하게 따진다.
LG의 유별난 와인사랑은 2007년 LG상사가 100% 투자해 와인유통전문회사 ‘트윈와인’을 설립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비록 2012년 문을 닫기는 했지만 와인 열풍을 예감한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의 지시로 세운 회사였다. 구본무 LG 회장과 구 부회장은 재계에 널리 알려진 와인 애호가다.
LG 곤지암리조트 내 레스토랑 라그로타는 10만명의 와인을 저장할 수 있는 동굴 저장소로 유명하다. 2013년 세계적 와인전문지인 와인스펙테이터 ‘2글라스’로 꼽힌 곳이다. 중장년층에 인기를 끌고 있는 폴더형 스마트폰의 이름 역시 ‘와인 스마트’다.
김민성 기자 m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