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유럽의 한국 간장
햇빛이 유난히 맑고 강한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 가운데 한국 간장을 제조하는 회사의 임원이 있었다. 그는 한국 간장을 유럽에 수출하는 업무를 하면서 유럽의 문화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구매자의 문화를 이해하고 마음을 움직여야 상품을 팔 수 있다는 것은 교역에 임하는 사람들에겐 상식이다.

모든 일에 열정과 헌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 그는 자신의 고충을 털어놨다. 일본이 일본 문화를 ‘독창적이고 정갈한 고급 문화’로 적절히 포장하면서 초밥과 함께 일본 간장을 유럽 전역에 팔고 있지만, 한국 간장을 유럽에 파는 일이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는 한국 문화가 중국 일본과 어떻게 다르고, 한국 간장과 일본 간장의 차별성을 알리는 데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우리는 1000년 전부터 유럽의 당신들과 교역하고 교류했던 역사가 있다고 이야기해 보세요. 서로 문화에서 동질성을 이끌어내 알려주면 공감대가 형성될 겁니다. 그러면 간장을 더 쉽게 팔 수 있을 거예요.”

그는 깜짝 놀라며 한국 문화재 속에 있는 국제성을 해외지사원들에게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나는 유적 및 유물의 사진 자료를 갖고 유럽, 인도 등 중앙아시아 유물과 한국 유물을 비교하면서 소통의 흔적을 설명했다. 그리스 미케네문명의 토기와 우리나라 가야·신라시대 토기의 유사성, 그리스 금 장식품과 백제 금 장식품, 페르시아의 장식검과 신라의 검, 이란의 유리잔과 고려 석탑에 새겨진 유리로 만든 사리기, 인도의 토기병과 가야의 토기병, 미얀마의 밑 둥근 단지와 우리 삼국시대의 토기단지, 로마의 둥근 항아리와 우리 옹기 단지의 똑같은 모습 등을 보여줬다.

그들은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며 놀라워했다. 또 한국이 먼 옛날부터 동서문명을 활발하게 가로질렀던 역사를 아는 것만으로, 일본 간장이 점령하고 있는 유럽 시장에 한국 간장이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 용기가 생겼다고 기뻐했다. 지금도 그때 그들의 활기찬 모습이 떠오르면 나 자신도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문화재가 가지고 있는 힘을 이렇게 기업의 발전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보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선화 < 문화재청장 shrha@ocp.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