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장 직무급'에 기본적 합의해야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일단 앞으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다. 그리고 여타의 상여금이나 수당들은 일률적, 정기적, 고정적 성격에 대해 노사 간 합의를 보거나 다툼을 벌여야 한다. 과거 3년치 소급분에 대해서도 노사 간 합의에 따라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던 것인지 또는 기업경영이 너무 어려워 줄 수 없는 형편인지 거세게 따져 봐야 결론이 나오게 됐다.

통상임금 판결은 끝났지만 노사는 다시 힘든 다툼과 타협, 그리고 적응과정에서 상당한 애를 먹을 가능성이 높다. 노사 당사자들이 판결을 받아 유연하고 현명하게 처리하면 법적 잣대는 어둠 속의 등댓불 같은 역할을 할 것이고, 하나하나 이익만 따지다 보면 날을 새워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해법은 안 나올 것이다.

통상임금 여파를 유연하고 현명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임금 전반에 걸친 타협적 그림을 노사가 같이 그려야 한다. 통상임금이 복잡한 난맥상을 보인 이유는 결국 기본급 비중이 작고, 초과근로가 많고, 기업성장세는 둔화됐는데 임금상승세는 잘 꺾이지 않는 격차 문제 때문이다. 따라서 중장기적 안목과 종합적 처방을 갖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뜻과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우선 기본급 비중이 너무 낮아 전체 연봉의 50%에도 못 미치고 심지어 20%인데도 있다. 통상임금의 산입 범위를 다시 대법원 판결에 맞춰 정비하는 작업은 복잡한 수당 및 상여금을 정비해 기본급 비중을 상식적 수준에서 늘리는 임금구성 단순화 내지 혁신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다음으로 초과근로가 많아 초과근로수당 비용이 엄청 늘어나는 데 따른 기업들의 걱정은 근로시간 단축과 휴일근로의 간접적 제한 및 유연 근로시간제의 활용 강화로 정면 돌파하고, 대신 생산성 향상과 연동해서 임금이 전체적으로 상승되는 공식에 노사가 동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임금이 해마다 반드시 올라가는 고성장시대의 임금결정방식, 즉 연공급은 조속히 개선돼 저성장 시대의 합리적 임금결정 방식을 따라야 한다. 사실 이것이 제일 근본적인 해법이자 통상임금 이후 임금체계 개편의 핵심이다. 그러나 그만큼 갈등이 많은 사안이다. 흔히 직무, 능력, 성과중심의 임금체계가 연공급의 대안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이 세 가지도 서로 다른 논리를 가지고 있어서 연공급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통상임금 여파의 대안으로 성과형 임금체계가 논의되는데, 일부 부분적인 성과연동형 보상의 강화는 필요하지만 이것이 기본급을 결정하는 수준에서 연공급을 대신하기는 안정성이 떨어진다. 생활이 될 만한 기본급이 안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임금체계는 노조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능력중심이라고 하지만 때로는 이것이 학력주의를 강화하고, 집단적 노동 수준인 우리 산업현장에서 실적으로 주축을 삼아 기본급을 정하기도 어렵다.

결국 직무중심의 임금체계, 그것도 성과나 실적에 따라 보상을 연동시킬 목적의 기업 내 직무급이 아니라 노조가 주장하는 근속에 따른 숙련도의 향상을 일정 반영하는 시장 직무급에 대해 기본적인 합의를 해야 한다. 이미 일부 업종에서는, 그리고 중소기업에서는 직무급이 통용되고 있다. 다만 조악하고 암묵적이라 불안정하다. 일부 대기업들도 신입사원 채용 시 능력과 직무에 따라 초임을 달리하고 있다. 외자기업들은 이미 시장 직무급 정보를 서로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런 흐름들을 잘 고려해서 업종별, 직종별, 직급별 기준을 담은 시장 직무급을 도입하자. 정부가 국가직무능력표준을 지금 많은 예산을 들여 한창 개발 중이지만 인재의 수요 측인 기업의 직무급과 연계되지 않으면 이것도 반쪽짜리 효과밖에 없다.

이장원 <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센터 소장·cwlee@kl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