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돈되는 것' 다 팔고 뭘로 사업하나
“액화천연가스(LNG)선단은 매각되는 벌크 전용선 부문에 포함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LNG선단은 언급하지 말아주세요.”(현대그룹 관계자)

3조3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자구계획을 발표한 지난 22일 오후 현대그룹 측의 긴급 전화요청사항이다. 벌크선은 포장하지 않은 화물을 그대로 적재할 수 있는 선박이다. 석탄 철광석 곡물 등 건화물 외에 LNG 등 습윤화물(wet bulk)도 실어 나른다. 해운업계에서도 현대상선의 LNG선단 매각 가능성을 점쳐왔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셰일가스 열풍 등으로 각광받는 LNG선단을 마지막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벌크선단 매각은 현대상선만의 일이 아니다. 국내 1위 해운사 한진해운은 이미 벌크선단을 한앤컴퍼니에 팔기로 했다. 국내 1위 벌크선사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STX팬오션도 조만간 매물로 나올 전망이다. 2위 벌크선사인 대한해운은 최근 새 주인을 만나면서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벌크선은 ‘알짜 사업부’로 통한다. 포스코 등 철강사와 한국전력을 장기 고객으로 확보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어서다. 이달 들어 벌크선운임지수(BDI)가 2010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시황 개선도 뚜렷하다. 덕분에 대한해운은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흑자전환했다.

이런 벌크선단을 팔고 나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사실상 컨테이너선 전문업체가 된다. 컨테이너선은 공급 과잉이 여전해 아직 시황이 회복될 기미가 없다. 해운 전문가들은 “벌크선단을 팔면 당장 목돈을 얻겠지만, 컨테이너선만으로는 수익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식의 구조조정은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것일 뿐, 중·장기 경쟁력 확보와는 거리가 멀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미래 수익성을 따져 봐야 하는 해운사 경영진은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채권단의 압박에 밀려 ‘팔릴 수 있는’ 매물을 내놔야 하기 때문이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벌크선은 전략물자를 나르기 때문에 국가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한데, 무조건 팔라고만 하니 외국으로 넘어가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서욱진 산업부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