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에게 던진 일성은 ‘대통합’이었다. 그는 20일 새누리당사에서 ‘대국민 인사’를 발표하고 “화해와 대탕평책으로 반세기에 걸친 분열과 갈등의 역사고리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지역과 세대, 그리고 성별을 불문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겠다고도 힘주어 말했다.

망국적 지역감정에 더해 계층과 세대로 갈라진 채 선거과정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겠다는 박 당선인의 생각은 너무도 당연한 시대적 과제다. 그러나 무원칙한 화해, 무질서한 포용, 몰가치적 아량, 무조건적 탕평을 대통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구악과 구질서와 기득권이 화합과 탕평이라는 단어 뒤에 온존하는 일은 국민 그 누구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지역과 직역 이기주의, 이념의 훼절, 원칙의 파괴로 발생한 온갖 사회적 소음과 기회주의를 끌어안는 미명이 대통합일 수는 없다. 비리와 탈법을 얼렁뚱땅 묻어버리는, 그래서 정치를 특권화하고 불법을 구조화하는 대통합은 오히려 금물이다. 정치를 법치의 위에 놓는 가짜 평화에 불과하다.

대통합에는 법치주의를 확고히 지킨다는 대전제가 있어야만 한다. 법치주의가 단순히 명문화된 법조문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단순한 입법(legislation)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법치는 상식과 이념 그리고 원칙의 총화를 말하는 것이다. 배려와 신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먼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때로는 시위군중들에게 적용되는 폴리스라인 같은 것이지만 때로는 신분과 차별을 부인하고 기득권을 부인하는 법적 평등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를 무너뜨리고 공동체의 신뢰를 깨뜨리는 행위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국정원 여직원을 불법 감금하는 등의 파행은 엄단해야 마땅하다. 온갖 흑색선전을 퍼뜨리는 등의 행위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기 자체를 부인하는 종북좌파는 배제되어야 하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자들에게 관용의 위장막을 제공할 수는 없다.

박근혜의 대통합은 산업화 민주화의 통합이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지역 통합도 포함된다. 호남총리를 임명하는 등 망국적 지역감정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박 당선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략적 계산이나 산술적 탕평, 시혜적 화해는 오히려 분열의 씨앗이다. 역대 정권 치고 탕평을 말하지 않은 정권이 없지만, 지역과 계층의 차별이 심화됐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운 정권도 없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통합의 출발은 법치이지만 이를 끌고가는 정치적 힘은 소위 친박이 국민들의 선거승리를 사유물화하는 것을 엄금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해 두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