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은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통해 갈 길을 확실하게 정한 것 같다. 이른바 공동정책 합의문이 진보당 강령을 압축시킨 판박이라는 것만 봐도 분명하다. 한·미FTA 시행 반대는 진보당이 요구하는 한·미FTA 폐기를 슬쩍 바꿔놓은 것이고, 보편적 복지와 소위 경제 민주화 공약들도 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2000년 창당 때부터 주장해오던 것을 따왔을 뿐이다. 여기에 두 정당은 공약들을 실천하기 위해 총선 이후엔 시민단체까지 참여하는 상설기구를 만들겠다고 한다. 대선 과정에서는 더욱 똘똘 뭉쳐 한목소리를 낼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놀랄 것은 없다. 어차피 무상복지니 1% 부자증세니 하는 아이디어들이 모두 처음부터 진보당에서 나왔다. 아류가 원조를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들은 민주당이 추구하는 정책을 알려면 40개항으로 구성돼있는 진보당 강령만 보면 충분할 것이다. 지금은 여론 눈치를 보느라 뒤로 숨은 재벌 해체나 재벌세 같은 경제 파괴책들, 과거 위헌판결을 받았던 토지·주택 공개념 확대, 민영화 대신 국·공유화를 통한 정부의 개입 강화 같은 공약들이 그런 것들이다. 이 뿐이겠는가. 진보당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에 이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 소위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진하자는 구호들도 틈새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이러니 민주당 지도부가 4년여 전 노무현 정부 때 스스로 했던 말을 번번이 뒤집게 된다. 한·미FTA가 노무현 정부 때와 달라진 게 거의 없고 제주 해군기지는 군사 전략상 불가피하다던 발언을 없던 일로 하려니 그땐 몰라서 그랬다느니, 주민들이 반대하면 재검토하는 게 맞다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게 된다. 장관까지 지냈던 의원들도 살아남으려고 입을 다문다. 이 같은 자기 부정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정치공학이 만들어내는 기막힌 현상들이다. 끝까지 양심을 지키려고 했던 노 전 대통령만한 인물이 없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국민을 1% 대 99%로 쪼개, 점령한 후, 복수하겠다는 민주당이다. 정권을 잡으면 보복하겠다며 칼을 간다. 오로지 반미를 부르짖는 종북세력들이 환호성을 올릴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