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美·英 쇠퇴 뒤엔 '분배집착' 있다
미국의 쇠퇴는 세계의 풍경 위에 먹장 구름으로 걸렸다. 아직도 공산주의 정권이 다스리고 그래서 강대국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이지 않는 중국의 빠른 부상은 어둠을 한결 짙게 한다.

지금 쇠퇴의 모습을 보이는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다. 영국에서 일어난 폭동은 원숙한 사회의 쇠퇴가 보편적임을 일깨워준다. 실제로,유럽 전체가 쇠퇴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다른 지역의 나라들이,희망이 없다고 여겨졌던 아프리카까지 경제 발전을 이루고 활력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떤 사회든 쇠퇴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원숙해지면,시민들이 차츰 야성(野性)을 잃고 퇴폐적 행태를 보이게 돼 사회의 활력이 줄기 시작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부는 대부분 초원과 사막이다.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사는 유목민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야성적이다. 그들의 거칠고 단련된 군대들은 늘 지중해 연안,서부 유럽,페르시아,메소포타미아,중국,인도와 같은 발전된 사회들을 침입했고 흔히 원숙한 사회들의 큰 국력을 압도했다. 스키타이족,흉노족,훈족,돌궐족,몽골족,여진족은 그렇게 성공한 유목민들의 대표적 예들이다.

야성은 잃기 쉬운 특질이 있다. 풍요로운 농경 사회를 정복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다 보면,유목민 군대는 고된 훈련과 위험한 싸움을 회피하게 된다. 그래서 대륙의 중심부에서 새로 일어난 유목민 군대에 정복당하거나 원주민들의 봉기로 무너지곤 했다.

미국은 비교적 오래 야성을 지녀왔다. 처음부터 이민들의 사회였던 미국에선 시민들이 야성의 가장 좋은 형태인 개척자 정신을 줄곧 지녀왔다. 동부에서 서부로 발전하면서,개인이 자신들의 힘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긴 개인주의 전통은 미국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했다. 서부 개척이 끝난 뒤에는 끊임없이 들어오는 이민들이 개척자 정신을 사회에 도입했다.

그러나 근년엔 소박한 삶과 절약하는 태도 대신 자신의 분수보다 높이 살면서 빚을 지는 관행이 널리 퍼졌다. 특히 정부의 부채(負債)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공장에서 땀 흘려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대신 사무실에서 편하게 일하려는 풍조는 생산성을 낮추었다. 인재들은 생산성이 높은 제조업이나 상업보다 법이나 금융과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노동조합이나 동업조합을 결성하거나 정부 허가로 울타리를 둘러친 사람들의 기득권은 창업과 경제 성장을 막았다. 사정이 이러하니,미국의 경제 침체가 순환적이 아니라 구조적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미국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에 따르면,사회의 쇠퇴를 부르는 여러 요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익집단들이 사회의 산물을 더 많이 차지하려 애쓰는 행태다. 그런 '지대 추구'는 생산 활동에 투입될 자원을 낭비할 뿐 아니라 생산 활동을 억제하고 비효율적으로 만들어서 생산액 자체를 크게 줄인다. 게다가 그런 조직을 만들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은 손해를 보게 돼,분배 문제를 악화시킨다.

사회가 원숙해지면 분배적 연합들은 차츰 늘어난다. 그래서 경제의 핏줄이 막혀 사회가 동맥경화증에 걸린다. 분배적 연합은 구성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므로,혁명이나 외국의 지배와 같은 사회적 파국을 통해서만 줄어든다. 영국과 미국은 그런 사회적 파국을 오랫동안 경험하지 않은 사회여서,분배적 연합들이 무척 많다. 반면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과 일본은 분배적 연합들이 다 사라졌고 덕분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올슨의 분석은 노동조합들이 막무가내로 제 몫을 늘리려 하고,힘센 동업조합들이 완강하게 이권을 지키는 우리 사회에 뜻있는 교훈을 준다. 시장 경제가 제대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번영과 자유의 근본적 처방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민중주의(populism)가 한층 거세어진 요즈음엔 더욱 그렇다.

복거일 < 소설가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