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수상 소감
"할머니께 감사드립니다. 할머니는 제 최초의 연기 스승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어요. '똑바로 좀 서있어''어깨 좀 제대로 해'.할머니와 전 많은 곳을 같이 다녔어요. 당시 상당히 불량했던 제게 할머니는 이르시곤 했죠.'그래도 잘 나가는 사람처럼 행동하거라.'"

"사람들에게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나를 소개합니다. 60여명의 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나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죄송합니다. 트로피의 여자 발가락 몇 개만 떼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솔직함과 재치로 인구에 회자되는 수상 소감이다. 앞의 것은 시각장애 가수 레이 찰스의 생애를 다룬 '레이'로 제77회 아카데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제이미 폭스,뒤는 '너는 내 운명'으로 제26회 청룡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황정민씨의 수상소감이다.

매년 말이면 각종 시상식이 지상파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지만 부문에 상관없이 지루하기 일쑤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거나 대본도 제대로 못읽는 진행자에 천편일률적인 수상소감까지.

지난해도 다르지 않았다. 어색한 진행자는 보기 민망했고, "감독님과 작가님 스태프 여러분 감사드립니다"도 모자라서 "회사 대표님께 감사드린다"는 판에 박힌 수상소감은 도대체 누구와 무엇을 위한 시상식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코미디언 휴 로리는 2006년 제63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게 되면 고맙다고 할 사람이 172명이라 이름을 적어 왔는데 잘 섞어서 3명만 발표하겠다면서 두 명을 읽고 끝으로 에이전시 대표 이름을 대곤 "어? 이건 내 글씨가 아닌데?" 해서 객석을 웃겼다.

[천자칼럼] 수상 소감
'2010 SBS 연기대상'을 받은 고현정씨의 수상소감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할 말 했다'와 '건방지다'가 엇갈리는 걸로 봐 내용보다 말투가 문제인 듯한데 방송의 영향력과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상소감은 가치관과 성품을 드러낸다. 짧은 시간 안에 하려면 힘들겠지만 그래도 너무 뻔한 얘기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생방송인 걸 믿고 멋대로 길게 하는 것도 거슬린다. 차라리 "늦은 시간까지 앉아 계신 방청객과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는 권상우씨의 소감이 훨씬 낫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