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데는 여러 이유와 사건이 함께 하게 마련이다. 만남이 짧을 수도 있고 오래갈 수도 있는데,죽음으로 인한 이별이라면 그 사람과 함께 나누었던 일들은 기억으로만 남는다. 예술가,특히 백남준과 박이소가 내게 미친 영향과 충고는 크게 남아 있다.

최근 LA카운티 미술관과 함께 '당신의 밝은 미래'라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빠져든 생각은 예술가가 세상을 떠나고 없을 때 작품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는가,작품이 계속해서 삶을 살 수 있는가이다. 이번 LA에서 열리는 한국 작가전에는 5년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박이소의 작품을 다시 만드는 작업이 포함돼 있다. 그의 유작 중 '당신의 밝은 미래' 'LA의 하늘' 'World Wide Web'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중 그림인'WWW'를 제외하고 나머지 작품은 보관했던 재료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박이소의 작업을 재현하기 위해 그와 친하게 지냈고,그의 작업을 도왔던 이주요 작가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힘든 일이 될 것을 알면서도 선뜻 그러자고 했다.

'당신의 밝은 미래'는 작품 제작에 썼던 나무와 램프,변압기 등이 남아 있다. 박이소는 예전 전시에 사용했던 재료를 다 해체해 보관하고 있었지만 작가가 세상을 떠난 후 재료와 사진만으로 재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작업 사진을 건축가에게 부탁해 도면화한 후 모형을 제작했다. 하지만 사진을 이용한 도면이어서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이 부분은 남아 있는 못자국이나 흔적에 의존해 퍼즐 맞추기를 하듯 완성해 나갔다. 그런데 LA에 와서 확인해 보니 변전기 코드가 잘려 나가 있었다. 220볼트가 아닌 110볼트를 사용하는 미국에서 220볼트 코드는 구할 수 없었다. 전시 오픈까지는 아직 2주가 남아 있어 LA에 올 예정인 작가들에게 코드를 사와 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작업인 'LA의 하늘'은 작가가 미국에서 만든 작품인데,지금은 드로잉과 사진만 남아 있다. 필자가 큐레이터로 참여했고,이주요가 작업을 도왔던 전시여서 힘들지만 가능하리라는 생각에서 재현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전시할 때의 기억과 사진 등을 조합해 작업을 재현하면서 기억이란 것이 얼마나 부정확한가를 새삼 느꼈다.

박이소의 작업을 다시 만들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은 작가와 작가를 둘러싼 동료 작가,큐레이터,평론가들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세상을 떠난 작가를 위해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애쓰는 것은 박이소가 후배를 도와주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나 싶다. 힘든 상황에서 박이소의 작업을 재현하는 데 정열을 쏟은 이주요 같은 작가가 있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sunjung1998@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