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일 두 편의 공포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미국 월가 금융위기와 중국발 멜라민 공포가 지구촌을 경악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건은 전혀 다르면서도 묘하게도 닮은 꼴이다.

우선, '파장의 세계화'다. 세계의 금융중심(월가)과 '세계의 공장'(중국)에서 터져 이에 자유로운 나라가 없다. 둘째,'예측 불확실성'이다. 월가 손실 규모는 원화로 환산하면 조(兆)단위를 넘어 영(0)이 16개나 붙는 경(京) 단위로 추산되지만 이게 끝이란 보장은 아직 없다. 멜라민이 들어간 가공식품도 앞으로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른다. 셋째,'회피 불가능성'이다. 월가 위기로 주식ㆍ펀드 투자자들은 주가 폭락으로 고통받고 서민들은 경기위축으로 삶이 팍팍해지고 있듯이,우유성분이 든 가공식품이 워낙 광범위해 만드는 업체나 소비자들이나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넷째,진작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공포의 자기복제성'을 지닌다. 전설적인 IB(투자은행)인 메릴린치,리먼브러더스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듣도보도 못한 금융상품들이 등장해 몰라서 더 두려움을 느낀다. 멜라민도 TV 앵커가 '멜라닌'(피부 색소)이라고 잘못 발음할 정도다. 낯설기에 알면 알수록 더 무섭다. 주부들은 "전자레인지에서도 사용가능하다고 광고했던 멜라민 식기가 347℃에서 녹는다는 사실을 이참에 알게 됐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월가 위기도 두렵지만 멜라민 공포는 훨씬 소름 돋게 만든다. 당장이 아니라 두고두고 '나'에게 영향을 미칠 월가 위기와 달리 멜라민 파동은 늘 먹고 마시는 '일상' 자체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어서다.

멜라민은 플라스틱 원료인 공업용 화학물질 중 그마나 독성이 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단하고 광택이 오래가 식기,주방용품 등에 널리 쓰이며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하루에 소량(체중 1kg당 0.63㎎)을 섭취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본다. 식약청이 설명하는 위험 섭취량은 멜라민 커피크림의 경우 성인이 매일 4000잔씩,'미사랑 카스타드'는 하루 40개씩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인 설명'도 광우병 파동 때처럼 국민에게 위안을 주지 못하고 있다. 멜라민 검출량이 허용치를 훨씬 밑돈다 해도 인간이 의도적으로(특히 돈을 벌려고) 넣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다.

두 사건의 또 다른 숨은 공통점은 세계 경제질서를 바꿀 수 있는 '파괴력'이다. 월가가 휘청거리면서 제동장치 없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낳았다. 마찬가지로 '중국산' 먹거리 불신은 자유로운 교역에 기반을 둔 세계 무역질서에 새로운 통제를 불러올 수도 있다. 금융에서 신성장동력을 찾고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에는 모두 부담스런 상황이다.

국내 식품업계는 중국 현지공장과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에 대해 심층 점검에 나서고 있다. 사실 점검해야 할 것은 싼 것만 찾는 심리가 아닐까 싶다. 종국에는 모든 '중국산' 식품 수입금지를 요구하는 여론이 조성될 수도 있다. 하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1년을 살아본 미국 언론인 사라 본지오르니가 내린 결론은 중국산을 가정 소비생활과 결코 분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중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경제 파트너다. 물가냐 안전이냐의 선택을 넘어서는 문제인 셈이다. 그래서 멜라민 파문은 월가 위기보다 훨씬 대안을 찾기 어려운 숙제가 됐다.

오형규 생활경제부장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