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화 < 레이크우드CC 대표 ryccgm@paran.com>

우ㆍ행ㆍ시란 '우리의 행복한 시간'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몇 해 전 나온 어느 유명 작가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이 나는 참 좋다. 그 소설을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간결한 세 글자가 주는 뉘앙스가 좋고,'쉰세대'라 그런지 어딘가 젊은이들이 씀직한 말이라 좋다. 아니 그보다 더 좋은 건 이기주의,개인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나만의 행복을 말하는 나ㆍ행ㆍ시가 아니고 우ㆍ행ㆍ시라서 더욱 좋다.

삼라만상을 망라하고 모든 인간사에는 시작과 끝이 있게 마련이다. 이제 무덥고 지친 여름의 터널을 지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숙연해지는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나는 사계절 중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이 좋은 계절에 우리의 행복한 시간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행복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주여,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놓으시고 벌판에 바람을 놓아주소서….'학창시절 이맘때 읊조리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작금의 현실에서 위대하다는 뜻은 무엇인가. 한여름의 매미가 나무에 매달려 제 할 일을 다 하고자 죽자사자 울어대다가 목숨을 다함이 위대한 일이요,조그마한 트럭에 수박을 가득 싣고 달고 시원한 수박 사라고 고래고래 외치던 수박장수의 힘든 일상이 위대했다. 거창한 구호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조그마한 목소리로 겸손하게 제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이들이 어디 그뿐인가. 그다지 힘 안 들이고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음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밝고 긍정적이란 뜻이다. 묵묵히 제 할 일을 다 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 살 만한 세상이란 말이 아니겠는가.

유대인의 격언에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란 말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향수를 뿌릴 때 자기에게도 몇 방울의 향수는 떨어진다는 의미다. 우리가 남에게 유익한 일을 도모하며 열심히 일할 때 몸은 피곤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뿌듯하며 표현하기 힘든 행복감이 몰려온다. 그래서 헬렌 켈러는 "산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그런데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더욱 신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가을의 문턱에서 남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 나 아닌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 행복해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늦었지만 이 가을엔 '우ㆍ행ㆍ시'를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