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중국 쓰촨성(四川省)을 덮친 대지진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20세기 최대·최악의 지진으로 불리는 1976년 중국 탕산(唐山) 지진 피해에 필적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탕산 지진은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76년 7월28일 160만명에 이르는 주민 대다수가 잠든 오전 3시42분, 이번 쓰촨성 지진과 같은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이 허베이(河北)성 북동부의 광공업도시 탕산을 뒤흔들면서 발생했다.

지진이 지속된 시간은 10초에 불과했지만 50㎢ 면적에 걸쳐 수십만채의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수많은 주민들이 산 채로 파묻혔다.

이때까지 탕산은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져 내진 설계가 된 건물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충적토(沖積土)로 이뤄진 불안정한 지반 또한 피해를 키운 원인이었다.

이어 16시간 뒤 같은 규모의 여진이 또다시 이 지역을 강타하면서 전체 건물의 85%가 붕괴, 사상자는 더욱 늘어났다.

이날 생매장된 사람들 가운데엔 야간 작업을 하고 있던 광부 1만2천여명도 포함돼 있었다.

피해는 탕산을 넘어 허베이성 동부 친황다오(秦皇島)와 톈진(天津)에까지 미쳤으며 진앙으로부터 140㎞나 떨어진 베이징에서도 일부 건물이 손상되면서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등 대혼란이 발생했다.

지진으로 인한 흔들림은 756㎞나 떨어진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허베이혁명위원회는 당시 지진으로 인해 65만5천명이 숨지고 77만9천명이 부상했다고 밝혔지만 이후 중국 정부는 사망자수를 24만2천419명으로 정정하고 경제적 손실은 100억 위안대로 추산했다.

그러나 보도통제로 인해 이러한 수치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은 3년여가 지난 뒤였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정치·사회적 이유로 피해를 축소했다고 보고 있어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아직도 의문에 싸여 있다.

탕산 대지진은 관료기구가 계급투쟁에만 전념하며 수차례의 지진 전조를 무시한 일종의 인재(人災)라는 시각도 있다.

중국 국립지진연구소(SSB)는 보름전부터 탕산 지역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것을 예측했지만 주요 정치 행사를 준비하느라 바빴던 대다수 공산당 간부들은 경고를 무시했다는 것.
생존자들은 지진 전날 밤 소위 지진광(Earthquake light.지진 전에 나타나는 빛)으로 불리는 이상한 불빛을 목격했으며 우물의 수위가 오르내리거나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등 재난의 전조가 보였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탕산 주민들은 이런 엄청난 혼란 속에서도 조용하고 침착하게 서로를 도우면서 재앙을 이겨내려는 자세를 보여 깊은 감명을 던져주기도 했다.

수백만 주민이 집을 잃고 노숙하는 가운데서도 탕산에서는 거의 범죄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이듬해 뉴욕 대정전 사태의 무법천지와 곧잘 비교된다.

1977년 7월 뉴욕 대정전은 불과 1시간10분 가량 지속됐을 뿐이지만 강도와 절도, 방화, 폭동이 전 도시를 휩쓸며 순식간에 무정부상태로 전락했었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hwang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