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장면이긴 하지만 너무 황당하다.

두루마리 화장지를 자로 잰 뒤,규정길이보다 1㎝라도 짧으면 고발하겠다고 업체를 윽박지른다.

초콜릿 과자를 수북이 쌓아놓고 일일이 절단한 뒤,초콜릿이 들어있지 않은 과자를 찾아내 항의한다.

주인공은 업체를 고발하지 않는 조건으로 금품을 뜯어내 생계를 유지한다.

이렇듯 막무가내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라고 한다.

악성과 소비자의 합성어다.이들은 식품에서 애벌레가 나왔다고 우기는가 하면,다 쓴 제품을 들고 와 환불을 요구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화장품 사용으로 얼굴에 이상이 생겨 출근을 못하고 있다며 위자료까지 지불하라는 억지를 부린다.

유통업계와 식품업계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고객지상주의,고객만족주의를 내세우는 마당에 자칫 잘못 대처했다간 여론의 지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조용히 처리하려다 보니,블랙 컨슈머와 타협을 해야 하고 이것은 또 다른 블랙 컨슈머를 양산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쥐머리 새우깡과 커터날 참치캔 사건이 터지면서 블랙 컨슈머들이 부쩍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물질을 집어넣고서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소위 '식(食)파라치'들이다.

이런 악성 고객들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햄버거에 인체의 일부를 집어넣어 공갈을 친 엽기적인 사건도 일어났었다.

기업과 소비자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공존의 관계다.

따라서 블랙 컨슈머들이 활개를 칠수록 그 비용은 고스란히 원가에 계상돼 선량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당하게 마련이다.

미국 기업인들은 회사경영의 가장 큰 애로점으로 블랙 컨슈머를 지목하고 있는데,우리 기업의 87%도 악성 클레임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랙 컨슈머의 퇴치는 소비자의 신뢰가 관건이다.이를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철저한 품질관리 외에 별다른 방안이 있을까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