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카를 융(1875∼1961)은 일찌감치 중년(中年)에 주목했다. 그는 중년을 신체와 정신력 모두 절정을 지나게 되는 인생의 정오에 비유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앞만 보고 달리다 중년에 접어들어 더 이상 갈 곳이 마땅하지 않음을 깨달으면 좌절하고 방황하는 '제2의 사춘기'를 겪게 된다고 분석했다.

융은 그러나 이때 인생의 나침반을 잘 설정하면 전반보다 괜찮은 후반기를 맞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근래 미국 하버드대 윌리엄 새들러 교수 또한 같은 이론을 폈다. 그는 삶의 주기를 네 단계로 나누고 그 가운데 특히 마흔부터 시작되는 제3 연령기(the third age,70세까지)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서드 에이지'야말로 미처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2차 성장기(1차는 10∼20대)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2차 성장에 성공하자면 먼저 정체성을 잘 파악하고 매사를 조화롭게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과 남에 대한 배려,현실주의와 낙관주의,진지한 성찰과 과감한 실행의 조화를 중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중년은 위험한 시기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면 얼마든지 멋진 인생을 구축할 수 있다는 메시지들이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평균 수명 78.6세,체감 정년 45세'라거나 '시간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는 속설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은 아무 준비 없이 중년을 맞는다.

그리곤 갑자기 닥친 '빨간불' 앞에서 어쩔 줄 모른다. 나이듦이란 아무도 피해갈 수 없고 중년이 되면 이전의 사고와 행동을 새 환경에 맞게 바꿔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방향을 잃어버리는 셈이다. '한국 경제가 중년의 위기에 빠졌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을지 모른다.

중년의 위기는 누구에게나 고통스럽다. 분명 예견됐던 일인데도 대부분 불시의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하지만 전반을 끝내고 후반으로 가자면 '작전 타임'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중년이란 작전 타임을 잘 활용하면 전반보다 나은 후반을 만들 수 있다. 불안해하며 한숨 쉴 게 아니라 대안을 찾아 도전할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