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대구가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하자 전국은 환호했다. 이제 과거처럼 '정권이 정통성 과시와 국민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해,또는 치적 사업으로 남기기 위해 국력을 낭비하며 대회를 유치했다'는 식의 비판은 찾기 어렵다. 올림픽과 월드컵이라는 국제행사를 통해 국가적으로 얻는 게 훨씬 많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국제대회 개최를 통해 '코리아'라는 국가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고,국내 인프라가 확충되고,국민들은 자신감을 가졌다. 실제로 두 대회를 개최하면서 코리아는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됐다.

국제대회를 유치할 때마다 기업인들은 자의든 타의든 항상 앞장서 왔다. 88올림픽 민간유치위원장이었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최고 권부에 부탁해 기업인들의 협조 약속을 얻어내고서야 유치활동에 들어갔다. 2002월드컵 때는 주요 그룹들이 아예 대륙별로 분담해 뛰었다. 대우그룹의 한 핵심 인사는 당시 기자에게 "요즘은 월드컵 유치활동 때문에 거의 아프리카에서 산다"고 했다.

대구가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권을 따내면서 이제 관심은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막판 피치를 올리고 있는 강원도 평창으로 모아지고 있다. 4년 주기로 열리는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모두 개최한 나라는 세계에서 6개국밖에 없다. 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 15조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22만여개의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고 하니 총력을 기울여볼 만한 게임이다.

그렇지만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아 보인다. 최대 경쟁 도시인 러시아의 소치는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어마어마한 오일머니가 무기다. 게다가 평창은 2003년 유치전 때 결선투표에서 3표차로 역전패당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박용성 두산 회장이 해외에 체류하며 유치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2% 부족한 상황'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판세 분석이다.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은 오는 7월4일 과테말라에서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 102명의 투표로 판가름난다. IOC 위원들의 대륙별 분포는 유럽이 52명으로 가장 많고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각각 20명 정도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세계경영을 추진하면서 정·재계에 폭넓은 인맥을 쌓아놓은 곳이다. 얼마 전 만난 재계의 한 고위 임원은 "김우중 회장이 나선다면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10표 정도는 너끈하게 모을 수 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지금도 이들 대륙에서는 대우와 김 전 회장의 이름이 통한다고 한다. 어쩌면 대회 유치 관계자들도 겉으로 표현은 못 하지만 김 전 회장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몇 표 차이로 막판 승부가 결정난다면 그같은 기대는 더욱 아쉬운 대목으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현재 실형을 선고받고 형집행정지 상태다. 국민들의 법감정이 김 전 회장의 유치활동을 용납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평창을 생각하면 김 전 회장의 유치활동이 절실한 게 사실이다. 기업이 손을 떼면 프로야구단 하나도 운영하지 못하는 나라여서 해본 생각이다.

김상철 산업부장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