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이사를 하거나 결혼 등 큰 행사를 치를 때 '손 없는 날'을 택일했다.

먼 길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는 못 하나 박는데도 손 없는 날을 따졌다. '손'은 날짜에 따라 사람이 가는 곳을 쫓아다니며 해코지하는 귀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손은 우리 말에서 존경한다는 뜻이 담겨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궁핍하게 살던 시절엔 손님이 반갑다기보다는 오히려 큰 부담이었다. 융숭하게 대접을 해야 하는데 변변한 음식이 없으니 손님이 두렵기까지 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과거 난치병이었던 천연두를 '손님'이라고 불렀을까 싶다.

우리가 말하는 손은 중국의 술서에 나타난 태백살(太白煞)과 같다. 태백은 행성의 하나인 금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우주의 숙살(肅煞)을 주관한다고 하는데,살은 곧 죽이는 기운이나 신을 뜻하는 것이다. 사람이 갑자기 죽으면 급살을 맞았다고 말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하고 있다.

태백살은 인도 불교의 한 파인 밀교의 '숙요경(宿曜經)'에도 나온다. 숙요는 일종의 천문법으로 해와 달의 운행하는 위치와 모든 별의 관계에 의해 사람의 화와 복을 점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우리나라에 알려졌다고 하니,손에 대한 민속신앙은 참으로 긴 세월 동안 우리와 함께 생활해 온 셈이다.

요즘 이사철이 다가오면서 손 없는 날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이런 사정 탓인지 이사업체들이 부르는 이사비용이 평일의 두 배나 된다고 한다. 손 없는 날은 음력으로 매월 9,10,19,20,29,30일인데,이 날이 주말이나 공휴일과 맞아떨어지면 비용은 더욱 커지곤 한다.

모든 악귀들이 훼방을 놓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손 없는 날'이 우리의 의식 속에서 그리 쉽게 사라져 갈 것 같지는 않다. 혹여 '손'이라는 존재를 과신한 나머지,우리 생활이 제약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