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奎載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경제학의 역사에서 밀턴 프리드먼을 능가할 학자는 없다"고 벤 버냉키 FRB 의장은 말했다.

통화준칙주의를 고집하는 버냉키로서는 당연한 평가다. 준칙주의는 성장률과 물가상승률 등에 일정 기준치를 설정한 다음 이에 연동해 통화량을 기계적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버냉키는 한걸음 나아가 물가목표제를 도입하겠다고까지 약속한 터였다. 준칙주의니 물가목표제 따위의 복잡한 단어들을 쓰고 있지만 실은 "정치는 제발 경제에서 손을 떼달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철거민 운동을 하던 청와대 비서관이 금리결정을 앞둔 한국은행을 방문하는 한국에서라면 통화주의는 옳고 그름을 떠나 아예 사치품이 되고 만다. 한은법의 물가목표제는 이렇게 지금까지도 선언문의 처지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헝가리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던 프리드먼은 생애에 걸쳐 확고한 통화주의 이론을 구축해놓고 지난주 세상을 떠났다. 그의 타계를 알리는 부고들은 케인스의 해독을 제거하는데 평생을 바쳤던 그의 자유주의 사상을 재조명하느라 부산하다. '작은 정부, 큰 시장'의 이정표를 세웠던 그의 투쟁 강도를 능가할 경제학자는 아마도 정반대편에서 폭력 혁명의 깃발을 들었던 마르크스가 유일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추모사들은 처음 그가 반(反)케인스의 깃발을 들었을 때만 해도 한낱 조롱거리였다고 쓰고 있다. 그는 그렇게 한걸음 두걸음 전진해, 정부 간섭을 정당화했던 케인스를 무너뜨리고 시장을 복권시켰다. 또 한사람,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을 썼던 하이에크와 '열린 사회와 그 적들'(Open society and it's enemy)을 썼던 칼 포퍼를 더하게 되면 현대 자유주의는 이들 3명의 위대한 스승을 더불어 기억하게 된다.

아직 케인스와 새뮤얼슨의 경제학을 더듬고 있는 한국에서라면 갈 길이 멀다. 한국에서는 케인스가 아니라 마르크스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긴 설명이 필요없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케인스의 가면을 쓰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테다. '계급'이라는 단어를 통해서만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좌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케인스를 빌려오기만 하면 어떤 정부 개입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설계주의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좋은 정부보다 나쁜 시장이 낫다"고 말해왔던 프리드먼으로서는 참여정부의 큰 정부 이데올로기에 할 말을 잃을 테다. 이 정부는 벌써 정부 과잉의 필연적 종착역에 당도하고 있다. 사상과 이론의 토대가 잘못되었으니 프리드먼이 그토록 경계했던 포퓰리즘의 참담한 실패는 충분히 예견되었던 일이다.

기업의 경영 선택권을 기업 아닌 정부의 권한으로 삼으려는 공정위가 대표적인 경우다. 최근의 일만 하더라도 순환출자 금지라는 적반하장식 공세를 펴면서 빈 껍데기만 남은 출총제를 굳건히 지켜낸 공정위다. 정치 권력이 경제의 운전대를 잡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운전면허 제도를 정부가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에조차 반대했던 프리드먼이었으니 공정위의 근황을 듣는다면 감았던 눈을 다시 뜰지도 모르겠다. 고인은 시장경제를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라는 말로 설명했지만 시장 아닌 정부의 선택은 선택 아닌 명령일 수밖에 없다.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참여정부 마지막 해의 예산도 정부 과잉의 참담한 실패 사례에 불과하다.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의 계산에 의하면 참여정부 들어 공무원 인건비만도 무려 12조원이나 더 지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터무니없이 늘어난 예산의 대부분은 자신의 정책실패를 돈으로,그것도 빚을 얻어 가려보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자주'를 떠벌리다가 국방비는 24조7000억원으로 9.7%나 늘려놨고 평준화 교육을 떠들면서 교육비는 30조원을 넘어섰고(7.4% 증가), 빈곤층을 늘린 끝에 보건 복지에 62조원을 쓸어담아야(10.4% 증가) 하게 생겼으니 이 큰 정부의 왜소한 국민된 처지가 서글프다. 프리드먼의 부고를 들으며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역시 정부 아닌 시장의 가치다. 한국경제신문 빌딩에서 내려다 보이는 500년 유서깊은 중림동 시장 위로 함박눈이라도 내렸으면 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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