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45년 전인 1961년 8월16일.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등 경제인들이 모여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를 창립한 날이다.

5·16 군사쿠데타로 어수선한 시절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전경련은 당시 박정희 군사정부의 '뉴딜'제안으로 탄생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경제인 사면을 건의하고 재계에 투자를 제안했던 방식과 비슷했다.

최고실력자에 오른 박정희는 부정축재자로 몰린 경제인들을 처벌하는 대신 이들을 경제부흥에 동참시켜 '보릿고개'로 상징되는 가난을 없애고자 했던 것.

전경련 초대 사무국장과 고문을 지낸 김입삼씨의 회고록 '초근목피에서 선진국으로의 증언'에 보면 이런 일화가 나온다.

고 이병철 회장이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1년 6월27일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부의장을 만난 얘기다.

부정축재자를 일소하라는 여론에 이 회장은 일본에서 귀국,박정희 부의장과 단둘이 만났다.

박 부의장이 "부정축재자들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이 회장은 "일할 수 있는 기업인을 양성하려면 적어도 20∼30년은 걸립겁니다.

기업인들의 경험을 잘 활용하십시오."

박 부의장이 "그렇게 하면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텐데요"라고 말하자 이 회장은 "국가 대본(大本)에 필요하면 국민을 납득시키는 게 바로 정치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대꾸했다.

기업인에 대해 나쁜 선입견을 가졌던 박정희의 마음은 이후 다른 경제인들을 만나면서 바뀌었다.

결국 군사정부는 재계에 경제단체를 만들어 경제건설을 이끌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군사쿠데타 두 달 뒤에 '경제재건촉진회'가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기업인 70여명으로 구성됐던 이 경제단체는 다음달 발족 총회 때 '한국경제인협회'로 개칭되면서 경제발전의 종자돈이 될 외국차관을 빌려오는데 발벗고 나섰다.

박정희는 이전 장면 정부에서 '경제 제일주의'의 성공조건으로 내걸었던 '윤리 제일주의'를 포기하고 '뉴딜'을 결단했다.

45년 전의 박정희는 권력을 쥔 1인자여서 '뉴딜' 구상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이와 달리 여당 대표일 뿐인 김근태 의장은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핀잔을 들으며 외로운 행보를 하고 있다.

이번 8·15 특별사면 명단에 포함된 노 대통령의 측근이나 정치인들이 국가발전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하지만 사면 리스트에서 빠진 기업인 중에는 이래저래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는데 보탬을 줄 기업인도 있다.

비자금 조성으로 처벌받은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은 사면됐더라면 현재 직무정지중인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 평창을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유치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한다.

어느 노(老)기업인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을 다 내놓고 다른 에너지 사업을 모색하면서 제2의 창업을 꿈꾸고 있다.

이들에게 죄를 물어 사법적 판단을 할지언정 사면복권 순위에서 정치인에게 밀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전경련 창립 45년을 맞는 오늘,박정희와 김근태 의장의 '뉴딜'과 노무현 대통령의 '올드 프렌드 딜 (old friend deal:오랜 정치동지에 대한 사면)' 등이 비교된다.

정구학 산업부 차장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