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성 정치자금 스캔들로 도덕성에 심한 타격을 입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조기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집권 노동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중도좌파 신문 가디언은 20일 사설을 통해 더 늦기 전에 총리 직을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에게 넘겨야 한다고 블레어 총리를 압박하고 나섰다. 앞서 우파 성향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와 인디펜던트 신문도 17일과 18일 각각 이제 블레어 총리가 사퇴할 때가 됐다며 사퇴론을 들고 나왔다. 가디언은 "블레어는 올해 물러나야 한다"면서 이상적으로 9월 말 전에 총리직을브라운 재무장관에게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이제 선택의 폭이 점점 줄고 있는 총리는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꼼짝 못하게 됐다. 더 이상 질질 끌어야 할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총리를 호되게 몰아세웠다. 블레어 총리는 지난해 총선을 치를 정치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부유한 기업가들로부터 거액 정치자금을 비밀리에 대출받은 뒤 이들을 상원의원 후보로 지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정치자금법 규정상 정당 기부금만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대출금은 공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블레어 총리가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블레어 총리가 97년 취임 당시 "청렴결백"을 약속한 데다 노동당 회계담당관, 브라운 재무장관, 존 프레스콧 부총리 등 당내 간부들조차 거액 대출금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상황이 블레어 총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했다. 블레어 총리는 월례 기자회견에서 "재정적 지원에 상관없이 상원의원직에 지명된 사람들은 그만한 자격이 있다"며 결코 돈의 대가로 상원의원직을 주지 않았다고 부인했으나 의혹은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앞서 블레어 총리는 15일 실시된 교육개혁법안 표결에서 당내 좌파성향 의원들의 반란으로 야당인 보수당의 도움을 얻어 통과시켜야 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당시 같은 노동당 의원 353명 중 52명이 당론을 어기고 교육개혁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스트래스클라이드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존 커티스는 "정치자금 스캔들은 교육개협법안의 당내 반란보다 블레어 총리에게 훨씬 더 위험한 문제"라며 본인이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주 정치자금 스캔들이 영국 신문 정치면 헤드라인을 휩쓸면서 블레어 총리의 지지도는 취임 후 사상 최저인 36%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노동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변함없어 야당인 보수당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당도 비슷한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대처하고 있다. 세 차례 총선에서 승리, 장기 집권 중인 블레어 총리는 지난해 총선 몇 개월 전 구체적 시기를 못박지 않은 채 3기 재임기간에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에게 당수직을 이양하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밝힌 바 있다. 22일 예산안을 발표하는 브라운 장관은 영국 현대사에서 최장기 경제번영을 이룬 장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런던=연합뉴스) 김진형 특파원 k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