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베이징 상점과 식당가는 산타 모자를 쓴 종업원과 '성탄 특가'를 소개하는 문구로 넘쳐났다. 기자가 사는 태양국제아파트 바로 옆 미용실도 성탄 특가라며 50% 할인을 내걸었다. 인근 창청호텔 관계자는 "음식과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크리스마스 티켓 700장이 모두 팔렸다"며 "가장 싼 게 1588위안(약 19만8500원)인데 대부분이 중국인 손님"이라고 전했다. 대졸 월 초임이 2000위안 수준임을 감안하면 잘 믿기지 않는다. 새벽 2~3시까지 영업시간을 연장한 상점도 부쩍 늘었다. 쇼핑몰 오리엔탈 켄조는 아예 이날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저녁 9시까지 36시간 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자본주의의 외래문화라며 중국에서 배척되던 성탄절이 이젠 중요한 대목으로 자리잡은 모습에서 소비대국이라는 또 다른 중국을 읽을 수 있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의 성탄절은 수출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그저 남의 나라 잔치였다. 실제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인조 크리스마스 트리의 80%는 중국산이었고,세계 어린이들이 성탄선물로 받는 완구의 70%엔 '메이드 인 차이나'가 붙어 있다. 하지만 이젠 중국에서도 성탄절이 내수 소비를 촉진시키는 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중국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대부분 남부 선전에서 만들어진다. 선전은 경제특구 1호로 자본주의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창이었다. 그 창을 통해 전 세계에 성탄용품을 공급해온 중국이 이제는 성탄용품의 소비국으로도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최근 들어 유난히 내수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수출과 과잉생산에 의존한 경제가 빚어내는 무역불균형과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해결하는 길은 내수확대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1월부터 개인소득세 면세 기준이 월 800위안에서 1600위안으로 확대되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제조대국에서 소비대국으로 오버랩되는 베이징 거리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면서 한국 기업들이 새해에는 '수출기지=중국'이란 도식에서 벗어나 '소비대국=중국' 내수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리길 기대해본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