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병 < 캡스 대표이사 hblee@tycoint.com > 며칠 전 한 친구가 술자리에서 우리 회사 로고가 찍힌 티셔츠를 입은 나를 보고 "출동이라도 나갈 것 같다"고 한 적이 있었다. 회사 대표답지 않은 캐주얼한 차림이라는 뜻이었지만 티셔츠 하나에도 회사의 정체성을 담을 수 있다니 디자인의 역할을 새삼 느꼈다. 최근 삼성의 애니콜과 LG 휘센이 세계적 브랜드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가격으로 승부하던 과거와는 달리 기업의 노력과 투자가 바탕이 된 디자인 파워가 전세계 유행을 선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디자인은 제품의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핵심 경영 요소가 되고 있다. 브리티시에어라인(BA)은 꼬리 날개에 운항 지역별로 다른 디자인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전통 의상의 체크무늬를,중국에서는 붓글씨체를,남아프리카에서는 아프리카 특유의 문양을 사용함으로써 해당 지역에 걸맞은 최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후반 이후 BA를 글로벌 항공시장의 강자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지난 99년 IDAS(국제산업디자인대학원)의 6개월짜리 '최고경영자를 위한 디자인 혁신 과정'에 참가한 적이 있다. 기업 언론 학계 정부 등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제품·서비스의 이미지,개인부터 국가 이미지 관리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전략과 비전을 제시해 주었고 디자인을 경영의 핵심 자원으로 인식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나는 디자인과 거리가 멀 것 같은 보안회사에 디자인 개념을 접목함으로써 유연한 조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다. 고객 접점인 출동대원의 유니폼과 명함,봉투,배지에도 스포티하고 친근한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해 신뢰감을 주었으며,매너 교육을 철저히 실시해 대고객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했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사내 인테리어를 변경하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디자인하는 것,캐주얼 비즈니스 복장을 장려해 자율성과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것 등이 토털 디자인 경영이다. 21세기는 감성사회다. 기업의 모든 자산을 디자인화해 소비자의 코드에 맞추지 않고는 급변하는 시대와 고객의 요구를 따라가기 어렵다. 최고경영자의 뚜렷한 의지와 과감한 투자가 토털 디자인 경영의 성공 조건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