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에 숨어 있다가 미군에게 순순히 끌려나와 체포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모습은 이라크인들을 비롯해 전세계를 당혹시킬 정도로 평소의 이미지와는 다른 것이지만 실제 그의 성격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모순 덩어리라고 BBC 뉴스 인터넷판이 16일 보도했다. `맞서는 자'라는 뜻을 가진 '사담'은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하려는 야망과 자부심으로 가득한 인물로 부각돼 왔고 그런만큼 초라하고 굴욕적인 그의 피신 행각의 말로는 충격적이다. 그러나 제 나라 국민을 가스로 독살하고 영국을 경멸했던 사담은 정반대로 낭만적인 소설을 창작하고 영국제 초콜릿을 즐겨 먹는 양극단의 면모를 보였던 인물이다. 그 때문에 지도자 자리에 있을 당시 그의 심리적 경로를 분석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고 지난 6개월간 대통령직과 두 아들을 잃은 데다 전세계가 보는 앞에서 치욕을 당한 그의 정신 상태가 어떤지도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같은 모순 속에서도 한가지 일관된 것이 있어 후세인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사람들은 순교 대신 생존을 택한 그의 마지막 결정에 크게 놀라지 않는다. 미국이 `쥐새끼'처럼 붙잡혔다고 선전한 그의 모습은 분명 비겁자의 것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아돌프 히틀러는 영웅인 셈이다. 그의 생존 의지는 지금까지 많은 기록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가 적이라고 여긴 수천 명을 처형한 것도 바로 이런 생존 본능과 권력 의지, 그리고 첨예한 강박증이결합된 결과이다. 그의 정치적 역정을 담은 전기물 "사담 후세인"에서 저자 에프라임과 이나리 라우치는 후세인의 "끊임없는 생존 투쟁"에 주목하면서 "살아 남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가 그에게는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분석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을 위해 후세인 분석작업을 해 온 정신분석학자 제럴드 포스트 교수는 그가 지금도 권력 복귀의 희망에 매달리고 있을 가능성은 없지만 적어도 현재의 상황을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사담은 이제 상황이 끝났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는 벌써 전범 재판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과업을 옹호할 것인지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트 교수는 전범 재판에 회부된 옛 유고연방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지금도 피고석에서 옛 추종자들에게 동정을 호소하는 것을 예로 들면서 "후세인도 똑같은 행동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후세인이 신문 과정에서 굴복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미 후세인이 조사자들에게 거짓을 말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그는 "후세인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며 그의 말을 어떤 방식으로든 믿는데 매우 조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문 과정에서 나올 후세인의 반응을 심리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일사불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느냐에 대해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후세인은 현재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항 공격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는 또 전쟁의 빌미가 된 대량살상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의 패트 로버츠 위원장은 "그는 잡아떼기와 속임수의 왕"이라고 불신감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전문가들은 후세인이 붙잡힌 땅굴의 성격으로 미루어 그가 피신생활 중 저항공격을 지휘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이라크 무기 해체를 위해 파견된 무기사찰단 단장이었던 롤프 에케우스는 사찰단이 이라크를 떠날 때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그는 후세인이 그같은 무기를 비축하려는 야망은 계속 갖고 있었을지라도 이것이 서방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 에케우스는 "그는 이란과 같은 적국에 대처할 때 이같은 무기의 전략적 중요성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이런 일들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산시설이라든가 무기 부품 등 세부적인 일들은 하급자들의 업무로 여겼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자신을 위대한 인물로 생각한 그의 안중에는 웅대한 역사만 있었지 자질구레한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