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의도 증권가의 세밑풍경은 스산하기만 하다. 800선을 오르내리는 종합주가지수를 보면 증시가 크게 나쁜 상황도 아니다. 하긴 우리 경제를 긍정적으로 보는 '외국인 투자자'덕분에 주가도 많이 올랐다고 말하는 우리네 위정자도 있으니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증시에서 멀어지기만 하는 국내기관이나 개인투자자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역지사지의 마음이 간절하다. 올 연말 증권가에 주목할만한 현상들이 적지 않다. 우선 정부가 시중부동자금을 증시로 유도한다는 명분 아래 은행과 증권사를 앞세워 만든 KELF(코리아 주가연계펀드)의 실패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안전자산 선호경향이 어느 때보다 강한 투자자의 취향에 아랑곳없이 은행 증권사의 점포수 곱하기 2억~3억원이라는 단순공식으로 2조원 내지 3조원을 유치할 수 있다는 금융당국의 '버전 0.9'전략은 출발선부터 그 결과를 예고한 것이었다. 어쨌든 시장을 도외시한 관치금융은 쓴 맛을 본다는 교훈을 새삼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KELF사례는 우리 증권산업사에 분명히 남겨져야 한다. 현투증권 매각의 후유증으로 현대증권과 감독당국간의 선물업 재허가 논란 여부도 따지고 보면 당국의 책임이 더 크다. 업무인허가권을 앞세워 기존 업무를 중단시키겠다는 발상 자체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반면 지난주말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논의된 사모주식투자펀드 활성화 방안은 세밑 증권가에 화제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 방안은 국내 금융사만을 대상으로 하는 펀드를 만들어 외국자본과 맞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시장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한국투자증권 대한투자증권 정상화 문제가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시장여론이 높았다는 점에서 정부의 이같은 정책방향은 좋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당국은 내년 상반기중 한투 대투 문제가 처리되지 않으면 우리 시장에 큰 일이 벌어지는 양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 수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들 회사의 경영권을 매각,혈세를 조금이나마 되찾고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을 해소한다는게 정부의 생각이다. 이는 당국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금력과 경영능력을 갖춘 곳이면 국내외자본을 가리지 않고 매각한다는 당국 방침은 한투 대투의 주인도 외국계로 넘긴다는 것에 다름아니었다. 외국인의 한국증시 지배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외국인의 비중이 40%를 넘어선지 오래다. 일본과 대만은 20%를 밑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의 외국인 의존도는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특히 증시안전판 역할을 맡는 기관의 비중은 한국의 경우 17%대에 불과한 반면 미국과 영국은 50%를 웃돌고 일본도 37%선에 달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한국의 대표적 기관투자가인 한투 대투의 매각은 신중을 기하는게 마땅하다. 국제화시대에 국내외 자본을 굳이 가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투 대투가 모두 외국계로 넘어가면 유통시장에 이어 발행시장도 외국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외국계에 안방을 내주다시피 한 은행권에 이어 증시의 양대축인 유통시장과 발행시장까지 외국인 주도 아래 들어간다면 우려되는 부작용이 한둘이 아니다. 올해를 되새겨보고 새해를 설계하는 12월.금융당국이 과연 시장이 원하는 금융구조조정의 큰 그림을 다시 짜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낼지 기대해 본다. song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