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일째 좁은 국토가 단풍나들이 차량 행렬로 몸살을 치르고 있다. 사람 홍수를 피할 생각이면 아이들 데리고 도시 인근의 유원지나 동물원을 찾아볼 만하다. 인간 세상과 다른 동물들의 자연스런 생태를 관찰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인간세태를 보노라면 굳이 동물원에 찾아갈 까닭이 없어 보인다. 인간들이 스스로 동물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자코페티 감독의 몬도카네(Mondo Cane,1963년 작, '개들의 세상' 뜻)는 지구 곳곳의 진기한 풍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고전이지만,이제 한국사회가 몬도카네로 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관심사 두 가지를 뽑으면 부동산 시장의 과열투기와 정치권 비리문제일 것이다. 사람들이 수익성 환금성 안전성에 따라 자산을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환란 이후 유동성(돈)이 많이 풀리고 대우그룹 붕괴에 따라 리스크 민감도가 높아지고,은행 등 금융회사들의 금리가 사상 초유로 낮아진 상황에서 3백조원 가량의 단기자금들이 마땅한 투자기회를 찾아 떠돈다. IMF '졸업'하고, 9·11 테러 이후 수출이 잠시 부진하자 내수시장에 눈을 돌린 정부가 가계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은행을 독려했다. 기업여신의 부실 때문에 도산·합병 등 쓰디쓴 경험을 치른 은행들은 진작부터 가계대출에 열을 올리고 있던 터라,주택담보 등 가계 대출은 더욱 가속화됐다. 결과적으로 주택수요가 늘고 집값은 오르고,투기 거품이 부풀어졌다. 못 가진 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적대감으로 응어리지고 있는 반면,가진 자는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큰 평수로 바꾸려 머리를 굴린다.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 가운데도 한 채보다 두 채,두 채보다 세 채를 가지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세태가 전개되고 있다. 쉽게 말해 개판이다. 투기를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국민 모두 자금과 기회가 있으면 전문적 투기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수급의 균형을 찾는 것이 올바른 문제 해결책이다. 엊그제 정부가 고강도의 부동산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궁금하다. 본격적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싸움은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측근의 일련의 비리로 불거진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대통령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 문제로 번지고,다시 한나라당 SK 제공 비자금 문제,민주당이 까발린 개혁신당을 자칭하는 열린'우리'당의 선거자금 허위 회계처리문제,다시 우리당의 정치자금 비리 문제로 엎치락뒤치락,오물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듯 하는 양상이다. 해묵은 정당·정치인의 비리는 크게,신출내기들의 것은 작게 보인다.그러나 신진들의 왕성한 식욕으로 미뤄 그것은 기회의 차이 때문이다.국민은 안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사실을. 관전하는 일반 사람의 흥미는 정치자금을 제공했음직한 다른 대기업,기업인이 거부 못하는 속사정,그 자금의 사용처 등일 것이다. 그러나 보다 진지하게 관전하는 국민이라면 이 같이 거대자금을 필요하게 만든 진범이 바로 유권자 자신들임을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고민해야 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온 이상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당·정치인들이 지난 번 선거기간에 모금된 자금명세를 바로 밝히는 고해성사를 함께하고 앞으로 선거제도를 바꿔 돈 적게 드는 선거공영제 등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는 97년 환란 이후 기업지배구조가 개혁되고 회계의 투명성이 높아졌다고 대외에 알렸다. 그러나 이번 거액의 정치자금이 빠져나간 흔적이 남겨진 투명한 재무제표를 제시한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바로 이점이 한국 경제를 보는 외국투자자들의 예리한 시각일 것이다. 5년여에 걸친 힘겨운 개혁 작업의 성과로 도루묵이 될 성 싶다. 정치인은 주인인 국민의 심부름꾼이자 충직한 개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못된 개는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고,주인도 몰라본다. 아니다. 못난 주인이 개를 그렇게 버릇 들인 탓이다. 제도를 바꿔야 개들도 인간으로 환생시킬 수 있다. 97년 환란이 천재일우의 경제회생 기회였다면, 금번 사태를 정치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