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돌아온 홍길동씨.식사를 마친 뒤 거실에 앉아 TV리모컨을 누른다. 화면엔 공중파TV의 연속극 대신 미리 설정해놓은 인터넷포털의 초기화면이 뜬다. '영화ㆍ비디오'를 클릭하자 '미리 보기'와 함께 국내외의 최신 목록이 나온다. 보고 싶은 걸 골라 누르면 즉시 영화가 시작된다. 화장실에 가려면 잠시 멈춰 놓으면 된다. 본격적인 주문형비디오(VOD)시대의 단면이다. 국내에 VOD 서비스가 처음 등장한 건 1994년 가을.서울 반포전화국에서 전화선을 이용해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서비스가 제대로 되려면 엄청난 전송속도가 필요한 만큼 일반화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줄 알았지만 초고속인터넷 설치 및 가입률 세계 최고를 자랑하면서 예상과 달리 곧장 현실로 다가왔다. 인터넷을 이용하면 공중파TV의 드라마를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고 극장에서 놓친 영화나 애니메이션,한번쯤 감상하고 싶던 옛명화도 찾아볼 수 있다. 조만간 TV와 컴퓨터가 통합되면 앞의 예처럼 소파에 편안하게 기대앉아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영화를 보는 건 물론 TV프로그램을 마음대로 편성해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VOD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인터넷업체들이 서비스 강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게임포털 넷마블은 차별화된 영화 공급을 위해 시네마서비스와 계약했고,다음은 아예 멀티미디어 센터 '큐브(cuve.daum.net)'를 개설,iMBC SBSi YTN iTV 온게임넷 등 40여곳의 콘텐츠를 서비스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VOD서비스의 핵심은 콘텐츠다. 인터넷을 통해 각국의 콘텐츠가 공급되면 누가 괜찮은 콘텐츠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소니가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선포하고 월트 디즈니가 삼성전자와 제휴한 것 모두 본격적인 VOD서비스 시대가 열리면 '홈 엔터테인먼트'시장이 완전히 재편될 것으로 전망되는 까닭일 것이다. VOD시대에 세계와 경쟁하려면 영화 애니메니션 게임 할 것 없이 제대로 만들어내는 게 급선무다. '양질의 콘텐츠 제작만이 살 길'이라는 얘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