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洸 < 한국외국어대 교수·前 보건복지부장관 >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진행되는 대변혁의 소용돌이에 거의 유일한 예외적인 경우가 대학이라면 지나친 주장일까? 그동안 정부가 많은 대학정책을 폈음에도 본질적이고 원칙적인 문제는 거의 외면돼 왔다. 정책당국과 대학 구성원 모두는 예산 타령에 치중하고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는 상상도 못할 이상한 대학지배구조를 묘안인양 내세우고 있다. 참여정부의 정책당국은 대학지원 특별법을 만들어 지방대를 중점지원하고 각 대학의 교수회를 법정기구화하겠다는 정책을 표방한 바 있다. 자율과 다양성 대신 규제와 획일성 중심이고 효율성보다 형평성을 강조하는 발상이다. 이는 대학의 발전을 도모하기는커녕 저해하는 조치들이다. 발상 전환의 관점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검토해보자. 먼저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너무 적다는 예산타령부터 살펴보자.좋은 시설과 교수를 위해 더 많은 재원이 투입돼야 한다고 한다. 대학교육의 문제를 교육예산의 빈약이라 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진단이다.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이 많은지 적은지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정부지원으로부터 현재 사회가 얻은 것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사실 지방 국립대의 시설과 규모는 국제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대학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은 국제경쟁력이 없는 불량품이고 사회의 필요와는 괴리된 불용품이다. 다음으로 규모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지원방법인데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대학교육에 정부지원이 필요하다면 그 지원은 국립 또는 사립 여부에 관계없이 대학 전체에 이루어져야지 국립대학만의 지원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학생(또는 학부모)에게 직접 지원을 하고 학생이 선택하는 교육기관에 그 지원금을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도입되면 교육시장에는 엄청난 변화가 야기될 것이다. 대학들간에 진정으로 효과적인 경쟁이 이루어질 것이고 교육자원이 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세 번째로 국립대학의 사립화를 추진하거나 최소한 독립경영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문제는 현재와 같은 제도 하에서는 경쟁력이 있는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이 불리하고 경쟁력이 없는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이 유리한데 있다. 납세자인 학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같은 대학교육을 받는 대학생 자녀를 두고 그 부담이 달라 불공평이 크게 야기된다. 사립대 국립대 중 어디를 택하느냐에 따라 학부모의 부담에 큰 차이가 나기에 교수진의 우월에 관계없이 국립대를 선택한다. 국립대가 등록금이 싼 것은 대학 경영의 효율성에 따른 것이 아니고 국민의 세금이 국립대에만 지원되기 때문이다. 교육의 외부성 때문에 정부에 의한 지원이 정당화될 수 있으나 정부가 대학을 직접 설립 운영하는 것은 어떤 논리에 의해서도 정당화되지 못한다. 경쟁적 사기업이 공기업보다 소비자 수요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는 잘 알려진 명제가 왜 대학교육을 두고는 왜 송두리째 망각되는가? 마지막으로 교수들의 급여에 대해서 한번 제대로 짚어보자.교수 당사자들이나 일반의 인식은 교수의 급여가 평균적으로 너무 낮다는 것이다. 급여가 낮은지 높은지 여부도 규명이 필요한 사항이지만 보다 큰 문제는 교수들의 급여가 너무 획일적이고 경직적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능력 없는 교수의 급여가 높고 능력이 높은 교수의 급여가 낮은데 있다. 1년에 논문을 10편 발표하는 교수와 10년에 1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교수간에 같은 학력 같은 연령이기만 하면 급여에 전혀 차이가 없다. 대한민국의 어느 직종도 교수사회만큼 공헌도와 무관한 급여체계를 유지하는 곳이 없다. 업적에 따라 급여가 주어지도록 해야만 교육시장에 경쟁효과가 나타나고 그 결과 학문이 발전하고 대학의 생산성이 제고될 것이다. 어느 시인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대학이라 했다. 대학인 스스로의 노력의 결과로 대학이 아름다워지고 경쟁력 있는 인재가 양성될 경우에만 대학과 대학인이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을 것이다. choik@chollian.net